휴대전화 한대로 건설사 설립 단속강화

  • 입력 2001년 4월 30일 19시 01분


‘휴대전화 컴퍼니의 입찰을 봉쇄하라.’

사무실도 없이 건설업체를 차려 공공공사를 따낸 뒤 다른 건설업체에 시공권을 넘겨주고 수수료만 따먹는 입찰 전문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서울시는 30일 “최근 10억원 미만 소규모 공사의 입찰 적격심사시 공사실적 평가를 받지 않도록 법적 규제가 완화된 것을 악용해 다른 사람의 사무실을 빌려서 사업자등록을 한 뒤 공공공사 입찰에 참가해 공사를 수주, 일반 건설업체에 다시 하도급을 주는 이른바 ‘휴대전화 컴퍼니’가 난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의 확인 결과 서울 금천구 소재 일반건설업체 D사는 3년 전 설립돼 관공사 몇 건을 따낸 뒤 현재 연락두절 상태다. 경기지역 A사 사장은 지난해 말 관공사 수주를 앞두고 다른 사람을 대표로 내세워 2개 법인을 새로 설립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휴대전화 컴퍼니’가 늘어나면서 건설업체를 설립해 주는 브로커도 등장해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 건설업계 임원은 “브로커들이 단돈 800만원이면 건설업체 설립을 대행해 준다”고 말했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97년 말 3900여개이던 건설업체수가 등록요건이 완화되면서 지난해 말 현재 두 배가 넘는 7900여개가 됐다”며 “부적격 업체가 난립하면서 멀쩡한 업체들이 공사를 따내지 못하는 등 낭패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업체들은 대개 한 명의 사업주가 한꺼번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5, 6개의 건설업체를 등록한 뒤 공사입찰에 응찰함으로써 정상적인 업체들의 수주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심지어 몇 개의 업체가 서울시 발주 공사를 나름대로 영역을 나눈 뒤 입찰에 참여하면서 일부 지역에선 80% 이상을 독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될 정도다.

지난달 초 대구에서는 ‘휴대전화 컴퍼니’ 설립을 전문적으로 대행해 준 브로커와 유령 건설업체 대표 등 97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된 사건도 발생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고건(高建) 서울시장은 30일 간부회의에서 “무자격 업체에 의한 부실공사를 부추기는 이 같은 입찰전문 브로커들을 단속할 특단의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들이 대부분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입찰에 참여하기 때문에 적발해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휴대전화 컴퍼니가 난립하게 된 것은 건설업 면허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되면서 부실 건설업체가 버젓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때문이다.

건교부와 서울시는 “업체의 등록요건을 강화하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하는 한편 전자입찰제 등을 도입해 입찰비리를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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