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째 혹한… "여기는 철원, 체감온도는 영하40도"

  • 입력 2001년 1월 15일 18시 30분


‘철원은 지금 한파계엄령 발동 중.’

연일 전국 최저기온을 경신한 강원 철원지역이 ‘한란(寒亂)’을 겪고 있다. 드라마 ‘왕건’에서는 1000여년 전 철원과 궁예가 뜨거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오늘의 철원’은 혹한에 떨고 있다.15일 새벽 철원기상대에 의해 자체 측정된 최저기온은 영하 27.6도. 바람이 불 경우 체감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냉동실 온도인 영하 20도를 훨씬 넘어서는 온도다. 바깥에 서 있으면 숨쉬기조차 어렵다. 바깥에 있는 소주병이 얼어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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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새 노인4명 숨져▽

14일 오후 10시 철원군 김화읍. 인적이 끊긴 주택가 중간 중간에 상가(喪家)임을 알리는 노란색 등이 눈에 띄었다. 학사1리의 한 상가엔 상을 당한 첫날임에도 몇몇 친지만이 빈소를 지킬 정도로 썰렁한 분위기였다.

상주 신현성씨(28)는 “중풍을 앓던 어머니가 어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이 동네에서만 2, 3일 사이 노인 네 분이 돌아가시는 줄초상이 났다”면서 “장지가 바로 앞산이지만 길이 얼어 상여가 나가기 힘든 탓에 영구차와 굴착기를 불렀다”고 말했다.

일주일째 연일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면서 가축도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목장에서는 젖소의 젖이 얼고 송아지들이 동사하고 있다. 염소와 사슴 등도 얼어죽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염소 사슴 얼어죽기도▽

김화읍 청량 4리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이원규씨(43)는 “보일러가 얼어붙고 우사에 깔 왕겨마저 공급이 끊기면서며칠 새 송아지 4마리가 얼어죽었다”면서 “고기소들은 도축장에 급히 팔았지만 남은 젖소마저 떼죽음을 당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상가의 점포들이 초저녁부터 철시하는 등 지역경제의 공동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15일 오후 10시 번화가인 신철원 사거리. 평소 외박나온 군인들과 주민들로 흥청대던 거리가 오후 9시가 넘자 ‘통행금지상황’이 됐다.

주택가마다 수도관과 보일러가 터지고 있다. 보일러 시공업체들이 하루에 수십건씩 밀려드는 수리신청을 소화하지 못해 일부 주민은 아예 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철원〓박윤철기자>yc97@donga.com

▼ 철원 왜 춥나 ▼

철원지방은 위도 38.4도로 남한 내 기상관측지점 중 가장 북쪽에 있다. 이번 한파를 몰고 온 한기(寒氣)핵이 만저우(滿洲)에 있어 북쪽일수록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내륙 한가운데에 있는 철원은 육지가 바다보다 열을 품고 있는 정도가 약한 탓에 위도가 비슷한 속초에 비해 10도 가량 낮다. 또 철원지방은 분지이면서도 북쪽으로는 평야로 트여 있어 북쪽의 찬 공기가 쉽게 밀려온 뒤 심한 복사냉각 효과를 낳는다. 찬 공기는 밑으로 가라앉는 성질이 있으므로 분지일수록 찬 공기가 고여 있는 경우가 많고 외부와의 교류도 차단돼 마치 아이스박스처럼 냉각되는 것.

기상청 관계자는 “통상 열섬효과가 있는 도시보다 임야나 산간지방이 춥고 그 중에서도 분지가 3, 4도 낮은데 철원은 그 절정에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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