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심야협상장]정부"잃을 것 없다" 노조 "장관 나와라"

  • 입력 2000년 11월 24일 00시 48분


23일 오후2시부터 시작된 한국전력사태에 관한 중앙노동위원회 특별조정회의는 처음부터 평행선을 달렸다.

조정위원들이 각 협상주체와 개별적으로 가진 회의에서 정부측은 한전 민영화를 촉진하기 위한 전력산업 개편안을 수정하거나 연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회사측은 구조조정문제는 단체협약 사안이 아니므로 쟁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노조측은 “전향적인 정부측의 제안이 없을 경우에는 예정대로 24일 아침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회의가 공전사태에 빠진 것은 오후 7시경 전체회의가 열리면서부터. 산업자원부 협상대표로 과장급 실무자가 참석하자 노조는 “장관이 나와야 책임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이른바 ‘기싸움’이 시작된 것.

그러나 정회 도중 오경호(吳京鎬)노조위원장은 “차관보 정도라도 온다면…”이라며 유연한 자세를 보였고 이에 산자부 실장(1급)이 협상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했다.

하지만 노조측은 다시 장관이 와야 한다는 쪽으로 강경 선회했다. 어차피 이날 중 완전합의가 불가능할 정도로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장관이라도 와서 성의를 보여줘야 조정 연기를 하더라도 명분을 세울 수 있다는 판단. 여기에는 불법파업으로 인한 위험을 무릅쓰기에는 실익이 없다는 현실론도 작용했다.

그러나 정부는 강경했다. 노조를 아예 무시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는 것. 파업을 강행한다면 사법처리하면 되고, 파업을 철회한다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채 강공 개혁드라이브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교착상태를 타결하기 위해 밤 10시반쯤 이남순(李南淳)한국노총위원장이 달려와 조정위원 및 노조지도부와 해결책을 모색했으나 정부의 강경자세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노조측은 “파국은 막아보자”며 고민했으나 상황은 불리할 뿐이었다.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24일은 노조창립일로 원래 쉬는 날이고 25, 26일은 주말이라 돌입직후 강력한 파급효과를 내기도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회의가 흐지부지 끝나고 사업장마다 모여있는 조합원들이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면 자동 파업으로 간주될 수도 있어 이래저래 한전노조는 외통수에 몰렸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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