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금 불법대출]이경자씨, 두얼굴의 '큰손'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30분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의 주역인 동방금고 이경자(李京子·56)부회장은 ‘기자 출신의 목회자 사모님’과 ‘사채시장의 큰 손’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여인.

이씨의 원적은 평북 영변이고 본적은 인천이나, 출생지는 중국 베이징. 초등학교는 제주에서, 중고교는 인천에서 다닌 뒤 서울의 H대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20, 30대에는 기자로 활동했다. 동남아 라이프지, 월간 보건교육, 주간 보건위생신문, 주간경제 등의 잡지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평소 “주간경제에서 ‘타이베이 특파원’(?)을 할 때 좋은 기사 참 많이 썼다”고 은근히언론계 경력을 내세우기도 했다.

남편은 경기 의정부시 모 교회의 목사. 그러나 이씨는 남편을 ‘목사님’이 아니라 ‘전무님’으로 부르도록 했다고 이씨 회사 직원들이 전했다.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채업에는 70년대 중반에 처음 발을 디뎠다고 한다. “시댁의 한 분이 그 쪽 분야에 있어 같이 일을 하게 됐다”는 게 이씨의 변. 그러나 이씨가 70년대 초 유가증권 위조 등의 혐의로 사법 처리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씨의 사채시장 데뷔 시기는 더 빨랐을 수도 있다.

이씨는 종종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다” “오늘도 검찰에 들어갔다 왔다”며 ‘배경’을 과시하곤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방금고 사건이 터진 뒤에도 그는 “오늘 아침 청와대에 갔더니 ‘여사님이 어렵게 되면 우리가 가만히 있겠습니까’라고 하더라. 한 100억원 쓰면 3∼4개월 있다가 나올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 했다고 그와 거래를 했던 한 기업인이 전했다.

이씨는 ‘뇌물 공세’에 대해서도 많은 말을 했다. “한국디지탈라인(KDL) 주식이 3만원 할 때 금융감독위에 들어가 3만5000주 뿌렸다” “나는 현금을 주로 쓴다. 승용차 트렁크에 현금 다발이 가득하다”는 식이다. 이씨가 “검찰의 실세 K검사장은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도 여럿 있다.

또 ‘이씨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S팩토링의 O씨는 장안에서 알아주는 조폭 거물’이라거나 ‘이씨의 사무실에 덩치 큰 어깨들이 많이 드나들었다’는 등의 얘기도 이씨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씨가 ‘큰 손’으로 부상한 것은 KDL의 정현준(鄭炫埈)사장을 만난 98년10월 이후다. 그 전까지 이씨는 서울 명동에 ‘글로벌 파이낸스’라는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소규모 사채업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정사장이 주식 시가 총액 1조원 이상의 벤처 기업인으로 급성장하면서 이씨는 사채시장의 신화적 존재가 된다. 정사장의 도움으로 작년 한 해 대신과 동방 2개 금고를 잇따라 인수했기 때문.

이씨 자신의 얘기나 이씨를 둘러싼 소문이 어느 정도 과장됐는지는 알 수 없다. 수백억원대의 돈을 굴리면서도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예금통장 하나 없을 정도로 이씨는 미스터리 투성이다.

이씨의 주민등록지인 경기 남양주의 빌라나, 실제 거주지인 서울 가락동 아파트(53평) 모두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 있다. 금감원도 이번 사건에 대한 1차 조사결과 발표 때 이씨 명의의 예금통장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을 정도다.

이씨의 말투는 거칠다. 그러나 무슨 얘기든 명확하게 못박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리곤 한다. 검찰 조사에서 베일 속에 가려 있던 이씨의 면모가 얼마나 드러날지 궁금하다.

<송인수·김승련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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