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시민들, 지역현안 주민투표로 의사 표출

  • 입력 2000년 9월 6일 18시 25분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

러브호텔 난립, 예고 없는 수돗물 단수, 초고층 건물 신축 등으로 진통을 앓고 있는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주민이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러브호텔 난립과 관련해 주민들은 행정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추가로 손해배상 소송도 준비중이다. 예고 없는 장기간 단수로 피해를 본 300여명도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5일엔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 신축 여부를 놓고 벌인 찬반투표에서 반대표가 찬성표를 압도했다. 백석동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손수 투표용지와 투표함을 만들고 참관인 개표원 검표원 등을 선정,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투표에는 전체 1만448가구 가운데 4523가구가 참여, 89%가 반대했다.

일산신도시 주민들의 상당수가 서울로 출퇴근하다보니 예전엔 지역현안에 거의 무관심했다. 그런 주민들이 이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변한 것은 남의 일처럼 여기던 지역현안이 결코 자신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 고양청년회 고양시민회 버스일터 고양여성민우회 등 이곳 11개 시민단체의 힘도 컸다. 전체인구 41만명 중 30대가 9만4509명으로 가장 많은 연령층을 형성한 것도 한 이유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고양청년회 박정범(朴正範·34)회장은 “반대의견을 개진해도 집과 학교 앞으로 러브호텔이 밀려오고 초고층 건물 신축이 추진되는 데 대해 젊은 신도시 주민들의 공분(公憤)이 확산됐다”며 “앞으로도 일산신도시 주민들은 우리 손으로 우리 문제를 풀어간다는 자세로 시정을 감시하고 생활환경을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사안에 대해 시민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55층 건물 개발주체인 요진산업 관계자는 “건물 자체 문제점이 아닌 이유로 신축에 제동을 거는 것은 부당하다”며 “법적 효력이 없는 주민투표에 상관없이 계속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양〓이동영기자>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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