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차를 샀는데 사고차였다"

  • 입력 2000년 7월 11일 19시 18분


문제의 비스토승용차.소유주의 신원보호를 위해 번호판을 지움.
문제의 비스토승용차.
소유주의 신원보호를 위해 번호판을 지움.
기아자동차의 비스토 새차를 대리점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입한 소비자가 차량에 이상이 있어 확인해 본 결과 사고차였다며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기아자동차측은 사고차임은 분명하나 사고 시점이 출고전인지 출고 후인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자동차회사가 사고차를 새차로 팔았다면 사고 사실을 알았건 몰랐건 한국자동차 회사의 신뢰도에 치명상을 가하는 중대한 문제이나 현재로서는 사고 시점이 소비자 인도 전인지 뒤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소비자 단체 또는 경찰의 진위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운전때부터 이상 있었다"

지난 5월 13일 비스토를 인도받은 김모씨(30·인천·주부)는 13일이 토요일인데다 영업사원과 자신이 모두 바쁜 일이 있어서 이틀간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그냥 세워 뒀다가 5월 15일 영업사원 김모씨와 함께 시운전을 했다.

김씨는 이때부터 차가 어딘지 이상하고 소음이 심했다고 주장했다.영업사원 김씨는 “소음이 있었지만 새차라 길들여지지 않아 그런 줄 알았다”고 말했다.

소음이 심하고 경사가 급하지 않은 언덕길 올라가는 데도 힘이 들었지만 일이 바빠 한달 가까이 차를 타고 다니던 김씨는 6월 18일 엔진오일을 넣기 위해 동네 카센터에 갔다가 ‘차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사고가 났던 차 같다. 지정A/S센터로 가보라’는 말을 듣고 정비사업소에 들러 사고차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내부 엉망…틀림없는 사고차"

그곳에서 차량 내부를 확인한 결과 라디에이터가 15도 정도 각도로 휘어 뒤로 밀렸을 뿐 아니라 범퍼 뒤쪽 철제 가로 지지대(서스펜션)가 휘어져 전체적으로 뒤쪽으로 쏠려있었다.

 

라디에이터에 흠집이 있고(왼쪽) 볼트를 풀었다 조인 흔적이 뚜렷하다.

엔진룸 볼트도 풀었다가 조인 흔적이 있었다. 바퀴 알루미늄 휠도 심하게 긁혀 있고 앞 왼쪽 타이어도 출고 때의 바퀴가 아니라 새로 부착한 것이었다.

 

사고차 오른쪽 앞바퀴(왼쪽) 알미늄 휠에 사고흔적이 있고, 새차에 있는 붉은 점(오른쪽 흰색 원 안)이 없어 타이어가 교체된 것을 알 수 있다.

범퍼도 탈부착한 흔적이 있었다. 정비사들 사이에서는 '새범퍼로 바뀌었다', '바뀐 것은 아니고 단지 범퍼를 떼내었다가 다시 부착했다' 는 등으로 의견이 엇갈렸다.

 

사고차(왼쪽) 엔진룸 아랫부분. 다른 비스토(오른쪽)와는 달리 엉망으로 휘어있다.

그러나 내부가 망가진데 비해 외부는 거의 손상이 없었다. 다만 앞 범퍼 모서리에 페인트칠을 한 흔적이 약간 남아 있었다. 김씨는 '작은 접촉사고를 내 페인트칠을 한 것이다'고 말했다.

"있을 수 없는 일" 기아차 측은 김씨를 의심

6월 23일 차를 점검한 정비사업소 관계자는 “외부 손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내부가 손상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10km이상의 속도로 달리면서 도로 바닥에 고정돼 있는 20~40cm 정도의 높이의 단단한 장애물에 부딪힌 정도의 사고일 것”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범퍼 손상이 미미한 상태에서 서스펜션이 휘어져 있는 것은,백만분의 일 정도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비사들에 따르면, 차를 제작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사고가 있었지만 적당히 외장만 바꾸거나 사고 자체를 모르고 그대로 출고시켰을 경우, 공장에서 김씨에게 탁송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를 탁송책임자가 이를 감추기 위해 눈가림으로 수리해 전달했을 경우, 김씨가 사고를 냈었지만 몰랐거나 고의로 차를 교체하고자 거짓말을 했을 경우 등이 추측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비사업소의 정비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김씨에게 인도되기 전에 차량 운송과정에서 사고가 났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희박하고 사고차량을 눈속임하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게 정비사업소측의 주장.

반면 한 정비사는 “울산공장 시운전 과정에서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업소 측은 "현대자동차 정비사업소에 의뢰해 차를 검사했지만 결론은 사고차라는 사실 뿐 사고 시점은 확인 불가능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새차와 다름 없이 고쳐 주겠다"

이 차는 5월 10일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출고되어 12일 경기도 출하장에 도착, 바로 다음날 오후 김씨에게 인도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차량마다 공장에서 출고, 인도 과정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시간적 공백으로 사고시점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

기아측은 휠의 손상이 김씨가 낸 사고 때 난 것이라면 당시 충격은 차량에 이정도의 손상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김씨의 주장을 의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아자동차측은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손상된 부품을 모두 교체해 새차와 다름 없는 차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환불 또는 교환을 요구

김씨는 “일이 바빠 한 달이나 차를 탄 후에 확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사고차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차량 교환 또는 환불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김씨는 차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사실도 없으며 음주운전을 한적도 없고 엔진오일 교환 때 외에는 카센터에도 간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차는 출고 때 부터 사고차였다는 것.

김씨는 6월 16일 농수산물 시장에서 주차한 차를 몰고 나올 때 앞부분에 뭔가가 부딪힌 소리가 났으나 별 것 아니려니 하고 내버려 둔 사실이 있다.

김씨는 “16일 사고로 휠이 긁혔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차체 옆 부분을 가볍게 부딪친 줄 알았다. 차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다.풀었다가 다시 조여진 볼트나 갈아 끼워진 타이어등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김씨는 “일이 바빠 너무 늦게 한달을 넘겨 문제를 제기해 의심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게 실수라면 실수”라고 말했다.

정밀 조사 불가피

이 차량이 출고 당시 사고차였는지 출고 이후 사고가 났는지 현재로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기아측이 사고차인 줄 알면서 김씨에게 차를 인도했을 가능성은 상식적으로는 없다고 봐야 한다.

차량제작 과정에서 사고가 있었다면 출고 공정에서 반드시 확인 될 수 밖에 없으며 공장에서 출하장까지의 탁송과정에서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어느 과정에서든 사고가 있었다면 관련자들이 알 것이며 사고차가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김씨가 차량 손상이 심각할 만큼 큰 사고를 내고도 산지 얼마 안된 새차가 아까워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그건 조사를 해보면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씨의 주장대로 이 차량이 출고 때 부터 사고차였다면 기아자동차의 차량관리 체계에 중대한 문제가 있으며 이는 기아차의 도덕성 신뢰성에 중대한 손상을 가져 올 것이다.

따라서 기아측은 이 차를 수리해 주는 것으로 없었던 일로 치부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정밀한 자체 조사를 실시해 차량 인도전 사고인지 인도후 사고였는지를 명확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신은/동아닷컴기자nsilv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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