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참사 1주기]火魔에 어린 희생 다신 없길…

  • 입력 2000년 6월 28일 19시 26분


“요즘 들어 부쩍 먼저 간 아이들 생각이 간절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화재 현장처럼 시커멓게 타버린 속내를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겠어요.”

‘씨랜드 참사 희생자 유족회’ 회장 고석(高錫·38)씨는 28일 잃어버린 쌍둥이 딸 가현이와 나현이 자매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며 말끝을 흐렸다.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군 서신면 씨랜드수련원 참사가 30일로 1주기를 맞는다. 유족보상과 관련자 처벌 등 법적인 사고수습은 매듭지어져 가지만 부모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가고 있다. 유족들은 아직도 아이들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등의 정서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큰아들 도현군(7)을 잃고 뉴질랜드로 이민갔던 김성하(金聖夏·38)씨는 “아내는 아직 감정을 추스를 자신이 없어서인지 함께 오지 않았다”며 추모식 참석차 혼자 귀국했다. 김씨의 아내 김순덕(金順德·34)씨는 필드하키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 등을 받았지만 “아들 하나 지키지 못하는 엄마에게 훈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지난해 이민가기 직전 모두 반납했다.

김씨는 “둘째아들 태현이가 가끔 형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아들이 떠나면서 남긴 보상금과 가게 수익금의 일부를 적립해 어린이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우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고회장은 “무심한 사람들은 이제 겨우 1년밖에 안됐느냐고 묻는다”며 “유족들은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자발적으로 모은 1억5000만원으로 ‘씨랜드 천사의 손 어린이 안전재단’을 다음달 설립한다”고 밝혔다.

유족회는 29일 오전 화성 씨랜드 화재현장을 방문, 위령제를 지낸 뒤 1주기 당일인 30일에는 서울 강동교육청에서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

<김진경기자·화성〓남경현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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