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수술스케줄 취소사태…20일 집단폐업 예고

  • 입력 2000년 6월 17일 02시 51분


정부의 의약분업안에 반대하는 의료계가 20일부터 집단 폐업을 예고한 가운데 16일 대형 병원들이 예정됐던 수술 스케줄을 취소하고 신규 환자를 받지 않는 등 전국 곳곳에서 벌써부터 의료대란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 병의원중 일부는 20일 이후 진료를 하지 않는다며 벌써부터 예약을 안 받거나 입원중인 환자를 내보내기 시작, 환자와 보호자들이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달 말 위암 진단을 받고 21일 서울 S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한 박모씨(50)는 16일 오전 병원측으로부터 수술이 취소됐으며 다음 일정은 말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박씨는 “의사들이 파업하는 동안에도 암세포는 번지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이날에만도 위암 환자 3명의 수술을 연기시켰다.

회사원 김모씨(35)는 아들(5)의 망막에 이상이 있어 4월에 서울의 또 다른 S병원 안과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감기 때문에 전신마취를 못해 몇 차례 연기했다가 이달 중순에 수술받기로 했는데 집단 폐업으로 다시 연기될지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대병원은 20일 이후에 수술 일정이 잡혀 있는 환자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은 물론 상태가 호전돼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도 20일부터 신규 환자 등록을 받지 않기로 했으며 삼성서울병원은 이달말에서 다음달 초 사이에 진료받을 환자의 예약 날짜를 바꾸고 있다.

이날 서울 시내 대형병원에서는 “왜 평상시보다 재진이 이렇게 늦느냐” “수술을 늦추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환자의 원성이 이어졌으며 병원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목격됐다.

일부 동네 의원은 폐업 장기화에 대비해서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을 한꺼번에 많이 조제해 주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B의원은 “예방 접종을 앞당기거나 아예 미루고 고혈압 당뇨병 환자 등에게 한달치 이상의 약을 미리 처방해 준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는 20일부터 일반 외래 환자는 받지 않지만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긴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는 계속 돌본다는 방침이다. 정부-의료계 대립이 계속돼 의료대란이 장기화하면 응급환자 등을 위한 의료 서비스마저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서울시내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중인 A교수(내과)는 “종합병원은 전공의들이 손을 놓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컴퓨터를 다루는 전공의가 없으면 입원 환자를 관리하기가 불가능하다. 의대교수들까지 전공의 파업에 동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계를 최대한 설득해서 파국을 막되 집단 폐업이나 휴진에 대비해 국공립 병원과 보건소를 24시간 운영하는 등 비상진료체제를 가동하는 방안을 점검하는 중이지만 묘책이 없어 환자들의 불안은 증폭되고 있다.

<송상근·이성주기자>songm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