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원장 성추문 전모 공개]원장-피해자측 진술 엇갈려

  • 입력 2000년 5월 30일 01시 59분


《이선(53) 산업연구원장의 성추문은 성희롱을 했느냐 안했느냐 하는 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지도층 인사의 도덕적 불감증이 문제의 본질이라 생각된다. 직장내에서 상사와 부하직원간에 일어나는 성추문 유형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본다. 이번 사건은 사실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채 원장측과 노조측의 치열한 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이 추문을 처음 보도한 동아닷컴은 그동안 파악한 사건전모와 취재과정을 상세히 공개한다.》

지난 4월 10일경 한 피해자가 산업연구원 오미숙 노조사무국장을 찾아갔다. 이 여성은 오사무국장에게 지난 4월5일 李원장과 설악산을 함께 가다가 되돌아 온 사실을 얘기하며 괴로운 심정을 털어놨다. 李원장이 밤늦게 전화를 걸기도 해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는 사실도 얘기했다. 이같은 사례가 다른 여직원들에게도 있다는 소문을 들은 오국장은 그때부터 다른 여성들의 피해사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노조는 피해자들을 추적해 6명의 증언을 확보했고, 그들의 진술 내용을 녹취,진술서 형식으로 피해사례를 작성했다.

5월22일(월) 노조는 피해자 6명의 진술서를 갖고 비공식적으로 李원장실로 찾아가 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李원장 측근인 안상길 행정관리실장은 23일 피해자 중의 한 여성을 찾아가 사실 은폐를 부탁했고, 성추문과 관련해 조용해주기를 당부했다.

노조는 24일 출근하자마자 이 문제를 논의하기위해 오전 11시10분에 조합원 비상총회를 열기로 했다.이에대해 원장측은 공론화하지 않으면 6월3일까지 사퇴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노조측에 써줬다. (각서원문 아래참조)

노조는 오전 9시40분경 E메일을 통해 전직원에게 각서받은 사실을 알리고 비상총회를 취소했다. 노조는 E메일에서 각서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27일 李원장의 성추문을 접한 동아닷컴 기자는 산업연구원을 방문, 노조측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으려 했지만 노조는 사실확인을 거부했다.

기자는 노조측과 직원들의 주변 얘기들을 들은 뒤 安실장을 찾아가 구체적인 사실확인을 요구했다. 그는 사실확인 대신 “(李원장도 멤버인)중경회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는 듯 하다”며 “아는 내용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安실장은 14시 30분경 회사로 돌아온 기자를 다시 찾아왔다.이 자리에서 李원장의 공식 입장을 담은 전문을 보여주며 취재내용을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기자가 李원장과 만나줄 것을 제의했고,그 후 기다리다 못한 李원장은 18시쯤 연구원 간부일행 4명과 함께 동아닷컴 취재본부를 찾아왔다.

李원장측 일행은 성추문을 극구 부인하면서도 “만약 기사화한다면 이름과 기관은 밝히지 말고 루머성 기사로 취급해 달라”며 당부했다.

李원장은 퇴근 또는 휴일에 여직원을 불러내 성추행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의심스런 한 가지 사례와 여성의 이름을 밝혔다.

“4월 5일(식목일)집 근처에 사는 여직원과 점심식사를 했고 식사 도중 아버지의 교통사고소식을 듣고 집 앞까지 데려다 줬다”고 주장했다.

식사도중의 대화내용에 대해서는 “노조가입을 만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李원장은 밝혔다.

또한 노조측에 사퇴 각서를 써준 경위에 대해 “노조를 안심시키고 빠른 시일내 사태수습을 꾀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시간을 벌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李원장은 노조에 각서 내용을 공론화하지 말라고 해놓고도 각서의 3개 항목을 스스로 밝혔다. 각서가 갖는 효력에 대해서도 “나는 法을 모른다. 아무 의미 없이 써 줬다”고 말했다.

李원장은 “자신을 지켜보는 윗선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자신과 연구원이 아주 곤란해진다”며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기자는 李원장이 돌아간후 피해여성과 끈질긴 전화통화를 시도했고 20시 30분경 통화에 성공했다.

피해 여성은 현재 집 근처에 安실장이 기다리고 있어 밖에서 전화한다고 전했다.

그녀는 제 3의 장소로 자리를 옮긴 후 다시 전화해왔고 23시경 동아닷컴에 뜬 기사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으며, 자신이 입을 피해에 대해 우려했다.

피해여성은 정확한 경위를 만나서 얘기해달라는 기자의 꾸준한 설득에 28일 새벽 4시경 동아닷컴 취재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李원장이 4월5일 점심먹고 집으로 데려줬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밝혔다.

또 李원장이 설악산으로 놀러가자는 요구에 마지못해 응했다고 하면서 설악산으로 가는 동안 내내 집으로 돌아갈 궁리만 했다고 말했다.그러다가 홍천 근처에 와서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거짓말을 한 뒤 승용차를 돌리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李원장이 손과 얼굴을 만졌느냐에 대한 질문에 “운전하던 중 걱정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만지고, 손을 톡톡 치면서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설악산에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에 대해선 “걱정되고 조금은 무서웠다”며 “위기를 모면할 방법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그녀는 “연구원에서 다른 피해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나만 밝혀지고 다른 피해여성은 문제를 삼지 않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28일 기자는 오전 10시30분경 연구원을 찾아가 李원장을 면담하고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이 자리에서 李원장은 피해여성의 진술을 일부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또 다른 피해여성들의 사례에 대해서도 해명을 시도했다.

28일 18시30분경 동아닷컴 사이트에 속보가 뜨자 李원장은 기사를 빼달라고 요구하거나 일부 표현을 바꿔 주도록 간곡하게 부탁했다.

29일 李원장측은 사태수습 차원에서 오후 2시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회견문 한장만 읽은채 자리를 빠져 나갔다. 하지만 李원장은 “여성특위를 통해 진실 규명이 될 때까지는 모든 사실을 밝힐 수 없다”며 “사퇴 또한 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했다.

노조 역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 입수한 피해사례를 공개하며 李원장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기로 하는 등 사퇴운동을 계속 벌여 나가기로 했다.

신일섭<동아닷컴 기자>sis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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