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로 돌아본 산불 피해현장]백두대간 온통 잿빛

  • 입력 2000년 4월 13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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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이 온통 잿빛이었다. 검은 연기가 산을 뒤덮었고 군데군데 불기둥이 치솟았다.

이미 불이 꺼진 곳도 적지 않았다. 그곳은 폐허와 다름없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흰 재가 덮여 마치 한겨울 눈이 내린 듯했다.

13일 헬기를 타고 내려다 본 강원 삼척 동해, 경북 울진지역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이날 낮 12시경 삼척시 동양시멘트 헬기장에서 기자를 태운 산림청 소속 헬기 602호(기장 이대식·李大植)는 동해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5분 정도 날아 동해시 삼화동 달방댐 부근 야산으로 접근하자 곳곳에서 산불이 번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연기 휩싸여 앞으로 못가▼

해발 500여m의 산 정상에서 흰 연기가 나는가 싶더니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자 왼쪽 산봉우리에서도 30여m의 불기둥이 치솟았다. 순간 연기에 휩싸여 헬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산봉우리를 돌아 바닷가 쪽으로 빠져 나와야 했다.

방향을 돌려 삼척시 성내동 남양동 쪽으로 다가가자 인근 야산에서 벌건 불길이 치솟았고 주민들이 집을 뛰쳐나와 긴급 대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늦게 출동한 소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삼척시 미로면 쪽으로 향하자 불에 타버린 검은 산하가 흉측스러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잔불이 있어 연기를 뿜어냈고 심하게 타버린 산들은 뻘건 속내를 드러냈다. 불길이 닿지 않아 짙푸름을 더해가는 인근의 다른 산들과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괭이로 가랑잎 걷어내▼

5분 정도를 더 날아 근덕면 마음리와 미로면 고천리, 원덕읍 등으로 가자 일대 야산에서 불길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도로변에선 산불 진화에 나선 소방차 수십대가 물을 뿜고 있었다. 헬기들도 연방 날아다니며 물을 쏟아부었다. 동원된 예비군과 민방위대원들도 불길이 민가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괭이 등으로 마른 가랑잎을 걷어내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준령들을 따라 서쪽으로 방향을 틀자 각종 희귀 동식물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두타산이 위용을 드러냈다. 해발 1300m의 높은 정상과 깊은 골짜기는 바라만 보아도 경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부근까지 번졌던 산불이 바람을 타고 방향을 동쪽으로 바꾸는 바람에 불길이 닿지는 않았지만 마을 주민과 산불진화 요원들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비상대기하고 있었다.

두타산을 뒤로하고 울진 원자력발전소 쪽으로 방향을 잡아 삼척과 경북 울진의 경계인 고포고개 쪽으로 다가가자 긴박한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원자력발전소에서 4㎞ 정도 떨어진 곳이라 소방차 수십대와 수천명의 산불진화 인력이 불길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산림청 헬기 10여대와 군 민간 헬기 수십대가 굉음을 내며 고개주위를 날아다녔다.

다행히 바람이 잠잠해지면서 산불이 진정됐지만 곳곳에서 폭격을 맞은 것처름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원전에서 3㎞ 떨어진 나곡천과 500m 떨어진 부구천 부근에도 수많은 산불진화 인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45분간 헬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본 산불 현장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삼척·동해〓남경현·이명건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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