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파동]양돈농가 日수출길 끊겨 연쇄도산 위기

  • 입력 2000년 4월 5일 19시 54분


“수출물량을 내수로 돌린다고 하지만 어디 그게 쉽겠습니까. 국내소비도 더 줄어들 게 뻔한데…. 양돈농가는 이제 끝장입니다.”

현재까지 구제역은 한우에게서만 발생하고 있으나 정작 피해는 양돈농가가 더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돼지사육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우 농가들은 내년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앞두고 이미 사육 규모를 줄이는 등 나름대로 대비책을 마련해 왔으나 양돈농가들은 97년 대만의 구제역 파동 이후 일본 수출이 크게 늘어나자 축산발전기금 등의 지원을 받아 사육규모를 늘리고 시설을 개선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수출량은 전체 사육량의 11%인 8만여t.

5일 오후 ‘보령고품질양돈회’ 회장인 충남 보령시 청라면 향천리 이병국(李柄國·37)씨의 돈사.

“4년 전 사육두수를 1300마리로 두 배 가량 늘리고 돈사를 신축하느라 1억여원의 정책자금을 얻어 썼어요. 그런데 수출길이 막혔으니….”

‘자식 같은 돼지’들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씨는 “이제 양돈사업에서 손을 떼야 할 모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보령시 청소면 중림리 박삼룡(朴三龍·47)씨는 “96년 정책자금 3억여원을 받아 돼지를 100마리에서 1500마리로 늘렸는데 이제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기 힘들게 됐다”고 한탄했다.

경기 파주시 파평면 늘로리 대양농장 주인 장석철(張錫哲·40)씨는 “스무살 때부터 돼지를 조금씩 길러오다 한번 승부를 걸어보려고 96년 3억원의 대출을 받아 사육두수를 2000마리로 늘렸다”며 “연간 3000여만원에 이르는 이자와 원금상환액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고 걱정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양돈농가는 대부분 상호 연대보증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축산발전기금 축산분뇨처리시설자금 등을 얻어 썼다. 이 때문에 내수마저 줄어들어 가격이 폭락할 경우 연쇄도산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보령고품질양돈회 이회장은 “군과 학교 등 공공기관 급식에 돼지 공급을 늘리는 등 정부가 파격적인 내수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령·파주〓지명훈·남경현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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