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운전예절]"도로한복판 운전자 시비 잦아"

  • 입력 2000년 3월 13일 19시 25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나는 ‘명성황후’에 출연하기 위해 약 1년 동안 서울생활을 했다. 나처럼 짧은 기간 한국에 살게된 사람들은 차를 사는 것 보다는 주로 택시를 타고 다니게 된다. 당연히 택시운전사들의 말투와 행동은 그 나라에 대한 인상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1월 초 서울 신라호텔에서 약속이 있어 종로에서 택시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중구 장충동에 들어설 무렵 내가 탄 택시와 뒤따라오던 트럭이 서로 차로를 비켜주지 않으려고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젊은 택시운전사가 “저 XX, 나하고 놀자는 거야”라고 욕설을 하더니 도로 한복판에 택시를 세우고 나가는 것이었다. 택시운전사와 트럭운전사는 서로 멱살잡이를 하다 급기야 땅바닥에 뒹굴며 치고받고 싸웠다. 10분이나 계속된 싸움에 도로는 온통 엉망이 됐지만 교통경찰은 나타나지 않았다. 손님으로서 황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약속시간에 바쁜 나는 슬그머니 택시비를 차 안에 놓고 내려 다른 차를 탔다.

뉴욕에서도 차로를 비켜주지 않으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치고박고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접촉사고가 났을 땐 반드시 길가 한쪽으로 차를 뺀 뒤 시비를 가린다. 다른 차량이나 손님은 염두에도 없이 운전자들이 도로 한복판에서 멱살잡이를 하는 추태는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같은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어쩌다 차를 몰고 나가 좁은 시내 골목에서 주차할 때면 익숙치 않아 곤란을 겪게 마련.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뒤에서 봐주며 손짓으로 도와주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은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한국남자들의 ‘기사도 정신’이다.

이태원(뮤지컬 '명성황후' 주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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