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농구]南 이상민-北 박천종선수 성탄전야 만찬

  • 입력 1999년 12월 25일 02시 29분


“형, 뛰면서 보니까 정말 별명대로 마이클 조던이던데요.”

“상민이 너도 연락(패스)하는 솜씨가 바람같더라야.”

조선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주최로 24일 저녁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만찬회. 한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남한 최고의 농구스타 이상민(27)과 북한의 마이클 조던이라고 불리는 박천종(30)은 앉자마자 친형제처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다.

박천종은 먼저 “오늘 만찬은 북조선이 주최하는 것이니까 내가 한잔 권하지”하며 북한 용성맥주를 따라줬다.

이상민은 25일 낮에 당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를 해야 되기때문에 술은 더 마시지 않았지만 박천종의 술잔을 연신 채워주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93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났던 두 선수. 둘은 지난해 방콕아시아경기대회 때의 만남을 화제로 삼았다.

당시 북한농구팀은 방콕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박천종은 관전차 방콕에 체류했고 결승전에서 남한을 열렬히 응원했다.

“형, 그때 우리팀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무슨 소리야. 우리가 동포를 응원하지 누구를 응원하겠니.”

“허재 전희철 현주엽은 잘 있니.”

“예. 모두 잘있어요. 주엽이는 오늘 갑자기 다른 팀으로 옮겼어요.”

“아니 그렇게 갑자기 소속이 바뀌기도 하니.”

박천종은 4월 국내프로농구 현대와 기아의 챔피언결정전을 비디오로 봤다며 “외국인선수들이 근중거리(골밑 및 중거리슛)는 모두 맡고 남조선선수들은 멀리던져넣기(외곽슛)만 책임지더라”고 한국 프로농구에 대해 촌평을 하기도 했다.

그때 현악4중주단이 연주하는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나왔다. 이상민은 문득 생각난듯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라 차가 많이 막혔다’고 하자 박천종은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인지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크리스마스는 다른 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상민이 또 “10월에 결혼해 아내가 임신중”이라며 박천종에게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박천종은 멋쩍은 듯 웃으며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결혼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답했다.

다시 농구얘기로 화제를 바꾼 이상민은 “예전에 탁구나 축구처럼 농구도 단일팀을 구성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박천종은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그 전에 같이 뭉쳐 중국을 깨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만찬회장 밖에는 안개등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츄리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이병기·전 창·이완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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