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특검]김태정씨 사죄의 고백(전문)

  • 입력 1999년 11월 24일 23시 23분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은 24일 최병모(崔炳模)특별검사실에 출두하면서 배포한 A4용지 4쪽 분량의 ‘김태정의 고백’이란 글에서 “가정을 올바로 다스리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전문(全文).》

무어라 말씀드리기에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공직자로서 저의 가정을 올바르게 다스리지 못한 것이기에 국민 여러분에게 감히 용서를 구한다는 말조차 꺼내기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의 허물로 온나라가 시끄럽고 국민 여러분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 것을 생각하면 얼굴을 들고 서 있을 수도 없지만 제가 알고 있는 진상을 특별검사에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여 오늘 저희 부부가 자진 출석하였습니다.

금년 1월경 저의 처가 신동아그룹 회장이었던 최순영씨의 외화도피사건과 관련하여 옷을 선물받았다는 등의 소문이 돌고 이를 근거로 사직동팀에서 내사를 한다는 소식을 전하여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어이없는 이야기라고 여기고 저의 처에게 사실인지를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검찰총장으로서 신동아그룹 회장의 외화도피사건을 보고받은 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최순영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말들이 있어 왔지만 엄정한 처리만이 저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혹시라도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는 자리를 피하여 왔고 저의 처도 저의 뜻을 십분 헤아려 다니던 교회마저 선선히 옮겨주었기 때문에 그 사건과 관련하여 저의 처가 어떠한 부정이나 값비싼 밍크코트를 구입하였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남편으로서 저의 처에 대하여 어떻게 내사가 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개인적으로 제 처와 관련된 사항을 챙겨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의 처가 모든 국민이 경제난 극복에 힘쓰고 있는 와중에 고급의상실을 다니면서 그 옷을 외상으로 구입하였다는 의심마저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제 처를 심하게 질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저의 처는 자신의 잘못된 처신이 혹시 저의 앞날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다가 저의 질책이 두려운 나머지 그 옷을 사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고 고집하면서 오히려 저를 설득까지 하였기에 저는 누구보다도 저의 처의 말을 믿었습니다.

더욱이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처의 입장을 이해하고 감싸주면서 제 처의 말을 뒷받침까지 하여 주는 마당이어서 저로서는 오히려 저의 처가 억울한 모함을 당하고 있다고 위로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제가 법무부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위 옷과 관련한 의혹이 다시 제기되자 저는 올바른 수사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세간의 우려를 무시한 채 제 처로 하여금 검찰에 고발까지 하게 하였습니다.

저의 처는 이형자로부터 어떠한 로비도 받은 것이 없었고 당시 라스포사에서 사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 옷이 잘못 배달되어 왔었기 때문에 그후 사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단순한 생각에 종전의 진술을 되풀이하였고 관련된 주위 사람들도 자신들이 이미 한 말을 바꾸기 어려워 차마 저의 처가 옷을 외상으로 구입하였다는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그런 과정도 모른 채 경솔하게도 검찰의 수사로 저의 처가 받고 있는 오해가 모두 풀렸다고 믿었고, 저의 믿음은 국회의 국정조사뿐만 아니라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뜻하지 아니하게 제가 저의 처를 책망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건네주었던 문건이 공개되고 그로 인해 마치 처음부터 제가 제 처를 감싸기 위해서 진실을 은폐한 양 잘못 알려지면서 제 처를 질책하고자 했던 순수한 제 의도가 왜곡되기까지 하는 형국에 이르렀고, 또한 저의 처를 감싸주려고 하였던 말들이 한꺼풀씩 벗겨 나가 제 스스로도 제 처의 말을 믿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저의 처에게 하나님 앞에서 고해하는 심정으로 진실을 털어놓을 것을 다시 한번 호소하였습니다.

그때 제 처가 눈물을 흘리면서 제 앞에서 털어놓는 말을 듣고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저의 경솔함에 땅을 치고 후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 처가 모든 사람들이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시기에 고위 공직자 부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수백만원이나 되는 밍크코트를 외상으로 구입할 생각을 하였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저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저의 질책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사실을 감추려고 계속 거짓말까지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처의 말만을 경솔하게 믿은 나머지 제 처와 관련된 사항을 개인적으로 입수하여 제 처를 질책하면서 결백을 밝히라고까지 한 어리석은 행동이 마치 사건의 처리와 관련하여 엄청난 부정을 감추는 듯 비추어지고 로비 의혹이라는 본질과 무관하게 국민의 의심을 받게 된 것은 저희 부부의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사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마는 이제라도 제가 알게 된 진상을 숨김없이 밝히는 것만이 저희 부부가 국민 여러분에게 사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밤새 저의 처를 설득한 끝에 자진하여 출석하였습니다.

제가 어떤 경로로 정보를 입수하였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항간에는 제가 개인적으로 정보를 입수한 경위에 대하여 추측이 무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취득한 정보의 출처에 대해 이를 낱낱이 밝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재삼 말씀드리건대 모든 책임은 저에게 지워 주십시오.

다시 한번 모든 분들에게 사죄드리며 제가 알고 있는 진실은 특별검사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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