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안 자수동기-가족표정]"동료들 가벼운 형량본뒤 결심"

  • 입력 1999년 10월 29일 19시 47분


검찰이 밝힌 이근안(李根安)전경감의 자수 동기는 복합적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달 21일 납북어부 김성학씨의 재정신청사건 1심 선고공판을 언론을 통해 보게 된 것. 검찰은 “이전경감은 동료들이 21일 징역 1∼2년의 비교적 가벼운 형기를 받는 것을 보고 가족들과 회의를 거친 뒤 몇 년만 복역하고 나면 석방될 것 같아 자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또 이 재판에서 부하들이 유죄판결을 받은데 대해 상사로서 죄책감을 느꼈고 이 사건에 자신이 책임질 부분도 있지만 과장된 부분도 있다는 생각에 떳떳하게 나가 밝힐 결심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현재 해외에 다녀온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김근태씨 고문사건과 반제동맹 사건의 경우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것까지 계산했다는 것.

이밖에 장기간에 걸친 은둔생활로 가족들이 상당한 경제적 심적 부담을 받고 있는 상황도 있다. 그는 29일 수사 관계자에게 “둘째며느리가 정말 효부인데 너무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며 목소리를 떨기도 했다.

이씨의 가족들은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피했다.

전날 밤 이씨의 자수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씨의 집에 10여명의 취재기자가 찾아와 밤새 집주변을 떠나지 않았으나 집안의 진돗개가 취재진을 향해 짖어댈 뿐 가족들은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씨의 부인 신옥영씨(60)는 이날 오전 8시10분경 500m가량 떨어진 자신이 운영하는 미장원으로 들어가며 “남편은 국민세금을 받는 공무원으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신씨는 “남편이 진작부터 자수의사를 밝히다가 경기도경 직원들이 구속되는 것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며 “아들들과 가족회의를 거쳐 억울하게 뒤집어쓰느니 10∼20년은 각오하고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그러나 김근태의원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정말 죄많은 사람들은 활개치고 다니는데 내 남편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씨의 장남(41·H식품 공장장·충남 논산시)은 29일 “이달 17일에도 서울의 집에서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모두 모여 아버지에게 자수할 것을 권유했다”며 “그동안 집안이 쑥밭이 되어 파산 직전에 몰리는 등 어려운 생활을 해와 이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이제 아버지가 나이도 들어 얼마나 더 살지 모르고 평상시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아 차라리 무거운 벌을 받더라도 아버지가 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재현·신석호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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