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交戰 파장/인터뷰]3代째 연평도생활 김운영씨

  • 입력 1999년 6월 17일 19시 24분


3대째 연평도에서 살아온 김운영(金雲英·78)할아버지.

그는 함포를 동원한 교전과 치열한 남북대치가 이어지자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가 난생 처음 ‘공산주의’를 접해본 것은 1950년 6·25전쟁 때. 연평동에 진주한 북한군 지도원은 “우리는 당신같이 가난한 어민들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는데 왜 도망갔느냐. 걱정하지 말라”고 어깨를 두드렸다. 그 지도원은 주민들에게 “이제 가난한 어민들은 모두 ‘해방’됐다.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연설하기도 했다.

“그러던 사람들이 요즘 먹을 것이 없어 굶으며 지낸다지. 이번에 내려온 것도 꽃게 몇마리 더 잡아서 외화 벌려고 그랬다더구먼. 참 불쌍한 일이야.”

15일 오전 남북간의 교전으로 연평도에 포성이 울려 퍼지자 김씨는 “여러분을 해방시키러 왔다”던 지도원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생각났다고 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어려운 말은 몰라. 하지만 나라가 백성을 굶겨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알지. 6·25전쟁 때 우리를 해방시키러 왔다고 큰 소리 뎅뎅 치던 사람들이…꽃게 몇마리 때문에 총 쏘고 어린 군인들을 다치게 해서야 되나.”

김씨는 멀리 보이는 황해도 섬들을 응시하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북한 사람도 같은 핏줄인데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나…굶지 않고 살게 됐으면 좋겠어….”

〈연평도〓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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