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성씨,소환서 조서날인까지 「세부지침」대로 행동

  • 입력 1998년 12월 13일 19시 34분


“검찰의 소환에는 핑계를 들어 응하지 말라.” “(범죄입증을 위해 관련자들의)목소리를 녹음기로 틀어주더라도 위조된 것 아니냐며 부인하라.” “서명 무인(拇印)은 절대 불리하다.” “사소한 사실도 전면부인하라.” “이석희씨와의 공모를 절대 시인하지 말라.” “검사가 책상을 치면 귀가하겠다고 말하라.” “국민을상대로 생방송한다는 자세로 진술하라.”

검찰이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12일 구속수감한 이회성(李會晟)씨 집에서 압수한 메모지에 적힌 내용이다.

검찰은 “이씨가 스스로 써서 갖고 있던 이 세부지침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미리부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버티는 ‘모르쇠’전략으로 일관한다는 세부지침을 만들어 놓고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얘기.

심지어 이씨는 한 기업인과 얼굴을 맞대고 대질신문을 받는 과정에서조차 직접 주고받은 돈에 대해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자 이 기업인이 “차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라며 핀잔을 줄 정도였다고.

검찰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출한 A4 용지 2.5장 분량의 이씨 메모지에는 검찰의 소환통보 단계에서부터 신문, 조서날인에 이르기까지 ‘행동지침’이 적혀 있었다. 이 내용은 수사 프로세스에 밝은 변호사가 가르쳐준 흔적도 엿보인다.

이 메모에 대해 이씨의 변호인인 안상수(安商守·한나라당)의원은 “회성씨가 주위사람이 한마디씩 조언한 것을 기록해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주장해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를 구속수감한 검찰로서는 ‘모르쇠’전술에도 불구하고 대선자금 규모와 사용처, 사건 관련자들의 역할 등을 밝여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검찰은 ‘총풍(銃風)사건’의 주역인 한성기(韓成基)씨가 이씨와 진로그룹 장진호(張震浩)회장이 대선자금 모금논의를 하는 것을 듣고 “모금 목표액은 3천억원이었지만 여의치 않아 5백억원으로 줄였다”고 진술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현재까지 드러난 모금액 1백50억원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모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검찰은 또 이씨가 구속기소된 배재욱(裵在昱)전청와대사정비서관을 통해 임채주(林采柱)전국세청장을 끌어들였는지도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 사건에 청와대 인맥이 동원됐는지를 규명할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씨의 총풍사건 개입여부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않고 있다. 검찰은 ‘세풍(稅風)과 총풍의 지휘부는 하나’라는 가설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개입됐는지도 수사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총재를 직접 조사할 지는 미지수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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