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자 超기업단위 노조가입 허용 법개정 『진통』

  • 입력 1998년 11월 24일 19시 49분


실직자들의 초(超)기업단위 노조가입을 허용하려는 노동부 방침이 정부부처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는 24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노동관계장관회의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반대의견이 많아 28일 재론하기로 했다.

초기업단위노조란 기업 또는 사업장 단위가 아니라 지역 산업 직종 등의 단위로 결성되는 노조. 제화공장에서 실직한 노동자가 기존의 회사 노조에는 가입할 수 없지만 같은 지역내 개별 제화공들로 구성된 성남제화공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현재도 항운 선원 제화공노조 등 1백48개(10만7천명)의 초기업단위 노조가 있다.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가입 허용은 2월 제1기 노사정 합의사항으로 제2기 노사정위원회는 실직한 실업자에 한해 초기업단위 노조가입을 허용하기로 9월28일 합의했다.

그러나 법개정 논의과정에서 법무부는 “실업자는 법률상 근로자로 볼 수 없으므로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법무부는 “실업자들이 노조를 통해 결속력을 강화할 경우 사회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는 근로계약을 전제로 하지만 노동조합법은 ‘임금 또는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합법이나 국제기준 대로라면 실직자도 근로자이지만 그동안 정부는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해석해왔다.

이 때문에 국제노동기구(ILO)는 ‘결사의 자유 침해’라며 7차례나 시정권고를 해왔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중 한국만 실업자의 노조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노동부는 “실직자만의 노조는 교섭대상인 사용자가 없어 불가능하고 초기업노조에 가입하더라도 쟁의행위 등을 할 수 없다”며 “실제로 조합비를 내기도 어렵고 기존 노조도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실직자의 노조가입 허용은 노사정위 운영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정부도 노동계의 눈치를 보지않을 수 없다. 재계도 걱정은 하면서도 노사정위에서 이미 합의해준 상태여서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노사정 합의 때 정리해고를 수용하는 대신 실직자의 초기업단위 노조 가입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법개정이 무산되면 노사정위를 탈퇴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부는 노동계와의 약속 때문에 결국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치권의 반대도 만만찮아 국회 법개정 과정에서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인철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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