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최대이슈는 취업』…과대표 서로 『안하겠다』

  • 입력 1998년 3월 30일 19시 58분


30일 서울대 도서관앞 ‘아크로폴리스’광장.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성 집회만 열리던 이곳에서 4백여명의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학교 댄스동아리 히스(HIS·서울대 춤꾼)의 춤판이 벌어졌다.

몇몇 학생들이 이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는 했지만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벙거지를 눌러쓴 학생들이 최신춤을 선보이자 구경하던 학생들도 환호를 보내며 춤판에 합류하기도 했다.

‘탈(脫)정치’. ‘우리’의 일보다는 ‘내’일에 관심을 쏟는 요즘 대학생들의 단면을 드러낸 ‘상징적인 이벤트’다.

대학가에 ‘개인주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문제로 캠퍼스가 최루탄 가스로 가득차던 풍경은 사라졌다. 대신 빈자리가 없는 도서관, 취업 기회를 살피는 안타까운 시선들이 대학가의 오늘을 말해준다.

이같은 대학의 개인주의 바람 영향으로 최근 과대표나 학생회장 선거가 투표율 저조로 무산돼 ‘서리체제’나 ‘직무대행체제’로 학생회를 파행 운영하는 대학도 있다. 26일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립대 한양대 동국대 숙명여대 광운대 단국대 등 서울에서만 6개대가 ‘회장 서리체제’로 총학생회가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대학이 학생회장 선거에서 투표자수가 과반수를 넘지 못해 후임자를 선출하지 못했다. 단과대 학생회장도 투표율 저조로 수차례의 재선거를 치르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과대표 선출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 예전같으면 한두 명의 경쟁자를 제쳐야 과대표를 맡을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지원자가 없어 ‘대표 없는’ 학과가 늘고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친구들을 대신해 잔심부름을 해야 하고 학생운동에도 불려다녀야 하기 때문에 공부나 데이트 등 개인적인 일을 할 시간이 없어 과대표 맡기를 꺼리고 있어 단과대별로 2,3개 학년은 과대표가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대학가 풍경이 이렇게 변한 이유는 △이념과 혁명의 시대 퇴색△여야간의 정권교체 등이 배경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몰고온 ‘취업대란’이라는 현실이 학생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

왕성한 활동을 자랑해 오던 동아리들도 요즘 ‘폐쇄위기’에 직면해 있다. ‘취업대란’극복을 위해 신입생들까지 학업전선에 뛰어든데다 학교주변에 각종 문화공간이 늘어나면서 동아리에 가입하는 학생들이 크게 줄고 있다.

〈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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