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수사 누그러지나?…사정당국 미묘한 변수 의식

  • 입력 1998년 3월 16일 20시 11분


안기부는 물론 정치권에까지 ‘태풍경보’를 울렸던 ‘북풍(北風)수사’의 풍속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에 상륙할지의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사정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16일 “북풍수사는 지나치게 요란하게 해서는 안된다”며 “이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기류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박일룡(朴一龍)전안기부1차장 등 경질된 안기부 수뇌부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에 대해서 사정관계자들은 지난주말부터 한결같이 발을 뺐다.

그들은 대부분 “아직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거나 “수사가 그 단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사정관계자는 “북풍수사는 미묘한 변수가 많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 등 북풍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권인사들에 대한 사정관계자들의 입장도 진상은 밝히되 사법처리는 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돼가는 분위기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가 “미국처럼 수사에 협조하면 처벌은 하지 않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그러면서 “정의원의 입을 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수사협조’를 촉구했다.

북풍 약화는 두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우선 사안의 민감성이다. 안기부 체제를 정비하기 전에 요란하게 북풍수사를 할 경우 안기부의 동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는 예상외의 변수가 돌출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정치적인 고려가 더 직접적인 것 같다. 특히 13일 여야총무협상에서 대타협이 성사된 이면에는 북풍수사와 관련한 여야간의 내밀한 의견조율이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북풍국정조사를 하자고 했을 때 여권이 의외로 쉽게 응하자 되레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아예 대선관련 모든 고소고발을 취하하자고 여권에 적극 제의하기도 했다.

북풍이 다소 주춤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진상은 철저히 규명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지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진상규명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북풍은 언제든 다시 파괴력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북풍사건의 초점은 대선공작차원에서 안기부가 북한관계자와 접촉했는지와 오익제(吳益濟)편지를 공개한 경위. 두가지 의혹이 밝혀지면 경질된 안기부 수뇌부와 정치권인사들의 연루의혹도 자연스럽게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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