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도둑의 참회]27년만에 되찾은 「양심」

  • 입력 1997년 11월 1일 20시 30분


충북 영동군 매곡면 강진리 마을에는 요즘 이 동네 박상윤(朴相潤·61·농업) 장근순(張根順·56)씨 부부가 겪은 「소도둑 얘기」로 떠들썩하다. 부인 장씨는 지난달 24일 낮 혼자 집을 지키던 중 낯선 50대 남자가 불쑥 찾아와 27년전에 소도둑질한 사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해 깜짝 놀랐다. 장씨는 이 남자가 다짜고짜로 무릎을 꿇고 『소를 도둑맞으신 일이 있지요』라고 물어 크게 당황했던 것. 장씨는 서울시립대에 재학중인 둘째아들(27)이 뱃속에 있던 해에 소를 도둑맞았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남편 박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강원도 벌목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장씨는 혼자 돼지를 키워 모은 돈으로 송아지 한마리를 사서 7개월가량 키웠던 어느 날 아침 외양간의 소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 온동네 사람들이 나서 영동읍은 물론 멀리 경북 김천까지 나가 잃어버린 소를 찾아보았으나 허탕치고 돌아와야 했다. 50대 남자는 장씨에게 『당시 소를 판 돈을 빌려서 도박판에서 탕진해 소를 훔치게 됐다』고 고백하며 1백만원을 내놓았다. 그는 『그동안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살아왔다』며 『30년전쯤 강진리에서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누구냐고 수소문한 끝에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씨는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그 남자에게 어디에 사는 누군인지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못했다. 장씨는 다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남루한 잠바 차림의 그 남자에게 차비에 보태쓰라고 10만원을 건네줬다. 〈영동〓박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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