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가 10일 개교 1백주년을 맞는다.
한 세기에 걸친 숭실대의 역사속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유린당하고 남북분단의 아픔을 겪어 온 우리 민족의 수난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미국 선교사 배위량(윌리엄 베어드·1862∼1931)박사와 평양 주민들이 힘을 모아 평양 보통강변에 숭실학당을 세운 것은 1897년.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광무 원년이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숭실대는 을사조약 반대에서 1백5인사건 조선국민회사건 3.1운동 광주학생운동 등을 거치며 항일운동의 구심점 역할도 담당했다.
특히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일제에 의해 폐교 조치를 당했던 1938년에는 숭실의 진통이 민족의 아픔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1월2일자 동아일보는 숭실대의 폐교 임박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풍우 40년의 삼숭(숭전, 숭중, 숭의), 여명은 2개월뿐이고 일제가 폐교를 할 방침인데 남매 양교를 후계하지 못함은 천추의 한」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숭실대는 6.25가 끝난 뒤 폐교 16년만인 54년에 평양 교정을 뒤로 하고 지금의 위치인 서울 상도동에서 다시 문을 열어 전통의 맥을 이었다.
지금까지 3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숭실대는 10일 1백주년 기념식에 이어 설립자인 배박사의 흉상 제막식과 초대학장을 지낸 한경직(韓景職)목사의 기념관 봉헌예배를 갖는다.
16, 17일 이틀간 「아시아 중소기업 포럼」이 사회봉사관에서 열리고 18일에는 숭실이 배출한 민족지도자 고당 조만식(古堂 曺晩植)선생의 추모세미나가 한경직기념관에서 개최된다.
이에 앞서 동문 및 지역주민을 초청해 체육대회와 길놀이 등을 펼치는 「숭실한마당」이 10, 11일 이틀간 교내에서 열리며 숭실대 총동문회는 14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숭실인의 밤」 행사를 갖는다.
〈김경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