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機 참사/현장 목격담]친구시신 수습 노인수씨

  • 입력 1997년 8월 8일 19시 46분


괌에 연수하러 간다고 저녁까지 같이 한 친구 이름이 대한항공(KAL)기 사고 관련 TV속보에 나왔다고 아내가 알려왔다. 평생 그렇게 가깝게 지내고 신세만 져온 그인데 평소 아껴 같이 다니던 아이까지 참사를 당했단다. 무조건 가서 시신이라도 찾아내려고 장갑까지 준비해 비행기를 탔다. 7일 오전 3시반 사고후 하루가 지나 괌 아가냐국제공항에 내렸다. 출구에 「유족안내」라고 써놓았지만 괌 교민회에서 나온 분은 분향소가 설치된 퍼시픽호텔에 가자고 하고 KAL측 직원은 라데나콘도로 가자고 하였다. 헷갈리는 유족들을 향하여 교민안내원은 KAL측이 무성의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분노했다. 수소문하여 먼저 퍼시픽호텔을 거쳐 라데나콘도로 갔다. 그곳에서 수시간이 지나도록 우왕좌왕하면서 KAL 직원에게 분풀이를 하다 날이 밝았다. 그날 오전 11시반경 사고지점 1㎞가량 후방에 내린 유족들은 어떻게든 시체를 보기 위해 현장에 접근하려 난리를 쳤다. 미군들은 노란 통제선을 그어 놓고 유족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나중에 괌지사가 와 몇마디 해주었으나 양이 차지 않았다. 그 뒤 유족들을 실은 여러 대의 버스가 오자 사고 경위를 설명해주겠다며 괌 정부측은 퍼시픽호텔로 가자고 했다. 잘못하면 농성이나 분란이 생길 여지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그때도 우리 관리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후 1시반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책임자가 분향소 강당에서 유족들에게 사고 조사 내용을 설명하고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유족들은 KAL측 책임자가 오든지 영사관 직원이 온 후에 하자고 아우성이었다. 다수결로 미국측 책임자가 먼저 자신들이 한 일과 할 일, 유족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시체의 신원 확인을 위해 치아 X레이 사진이나 지문 등 증빙자료가 될 만한 물건을 한국에서 지참해 왔느냐고 물었다. 금시초문이었다. 부랴부랴 유족 일부는 사망자의 신체적 특징 등을 적어 그곳에서 자원 봉사하는 괌 교민회 사람들에게 메모지를 넘겼다. 그때까지도 사건 수습경위를 알리고 안내하는 대한민국 관리나 KAL 직원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의 일을 순서대로 잘 하는 미국 사람말에 입만 벌렸다. 국제민간항공협약 규정에 의하면 조난항공기에 대해 등록국의 관리가 조난지 관리의 감독아래 구호조치할 수 있고(제25조)사고의 조사에 입회할 기회를 주도록(제26조) 되어 있다. 그때까지 우리 공무원은 무엇을 했고 유족들에게 왜 설명을 하지 않았을까. 신문에서 정부가 사람들을 보냈다는 기사를 봤지만, 그리고 전에 삼풍백화점 등 대형사건의 교훈으로 재난관리법이 새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튼 과학적 조사 때문에 언제 시체를 인수할지 기약없는 유족들만 불쌍했다. 지금까지 큰 사고가 한두번 난 것도 아닌데 우리 백성은 이곳 이국땅에서 속절없이 어디에 대고 하소연해야 할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고후 대책이라도 각 기관끼리 체계화하고 입법미비한 법은 손질하여 「남국에서까지 버려진 백성」들이 남지 않도록 하였으면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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