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안기부 청사에서 열린 黃長燁(황장엽)전 북한 노동당비서의 기자회견은 그의 입을 통해 베일에 가려진 북한 권력층의 행태와 북한의 실상이 생생히 밝혀질 것이란 기대 때문에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 회견에는 내외신 기자 26명(외신2명)이 참석했다.
○…안기부측은 이날 회견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사전 예행연습까지 갖는 등 철저한 준비를 했다는 후문.
특히 權寧海(권영해)안기부장은 이날 회견에 앞서 보도진에 『가족관계나 탈출에 도움을 준 사람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은 피해달라』고 간곡히 당부.
권부장은 또 『황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런 의혹을 피하기 위해 4일로 예정됐던 회견을 金鍾泌(김종필)자민련총재의 국회연설과 겹친다는 이유로 연기한 것』이라고 강조.
안기부측은 안기부청사내에서 회견이 진행되는 데도 불구하고 회견장 입구에 보안검색대를 설치해 보도진에 대해서도 일일이 보안검사를 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
○…이날 황씨는 감색양복에 붉은색 줄무늬 넥타이, 그의 측근인 金德弘(김덕홍)전여광무역상사 사장은 밝은 회색 양복에 점이 박힌 노란색 넥타이를 맨 차림으로 회견장 정면의 쪽문을 통해 입장. 특히 두 사람은 염색을 한 데다 넥타이핀에 커프스 버튼까지 해 세련미가 풍겼다.
황씨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으나 만성후두염 때문에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읽거나 답변도중 탁한 소리를 냈으며 회견초 『귀가 잘 안들리니 큰 소리로 질문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또 질의응답 도중 서울말을 제대로 못알아듣고 가끔 옆자리에 앉은 김씨에게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회견말미에는 한 여성기자가 같은 질문을 두차례 반복했는데도 못알아듣자 『이곳에 와 TV를 보며 서울말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성들의 말은 빨라서 알아듣기 힘들다』고 실토하기도.
○…황씨는 질문에 시종 여유있게 답변하면서도 북한의 남침위협 등과 예민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이것은 철칙』『이것만은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마치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노교수 같은 모습.
그러나 『가족들 생각에 잠못이루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때때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고 정신이 혼미한 느낌』이라고 말해 안쓰러움을 자아냈다.
황씨는 회견이 끝난 뒤 평양상고 동문인 康基石(강기석·74)씨로부터 환영꽃다발을 받고는 한동안 얼싸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