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성家系 기사화요청]신문사측-이병하씨 주장 엇갈려

  • 입력 1997년 7월 7일 20시 05분


「李壽成(이수성) 가계 특성」이라는 흑색선전물이 국회 의원회관 등지에 유포된 사건과 관련, 내일신문은 7일 『朴佑炳(박우병·신한국당)의원의 비서관인 李炳夏(이병하)씨가 문제의 문건과 같은 내용의 자료를 기사화해달라고 부탁해왔다』고 확인(본보 7일자)했다. 그러나 이씨는 보도가 나간 뒤에도 『문건을 작성하거나 살포한 적이 없다』면서 『무슨 문건을 들고 내일신문사를 찾아간 적도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이처럼 상반되는 주장의 진위(眞僞)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주장을 좀 더 조목조목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내일신문측은 정치팀의 장모기자가 지난달 11일 국회 의원회관의 박의원 방에서 이씨로부터 『이수성 부친의 친일행각에 관한 자료가 있는데 기사를 쓰겠느냐』는 얘기를 듣고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씨는 『떠도는 얘기를 나눈 적은 있으나 자료가 있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고 부인한다. 그러면서 이씨는 『현대사를 공부한 사람은 대충 알고 있는 얘기로 그냥 주워 들은 얘기를 말한 것인데 왜 표적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해한다. 사실 이 대목은 기억에 차이가 날 수도 있고 말만 주고 받은 것이기 때문에 입증하기도 어렵다. 두번째 문제가 되는 대목은 지난달 28일 오전9시경 이씨가 장기자에게 『자료를 하나 검토하자』며 전화를 건 뒤 내일신문사를 찾아가 신명식편집국장을 만났다는 부분이다. 내일신문측은 신국장이 신문사옥 4층 여성문화센터내 상담실에서 이씨와 함께 이씨가 가져온 자료를 검토했다면서 날짜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씨는 아예 『내일신문을 찾아간 적이 없다』고 부인한다. 이씨는 지난달 28일 오전 내내 사무실에 있었으며 오후에는 국회 의원동산에서 열린 6.10항쟁 10주년 모임에 참석했다고 「알리바이」를 댔다. 이에 내일신문측은 『이씨가 찾아온다고 해 바쁘니 점심 때 오라고 했으며 이씨는 낮 12시경 찾아왔다』며 『그날 발행인도 함께 만났다』고 밝혔다. 결국 해명의 열쇠는 신국장과 이씨가 쥐고 있는 셈이다. 이씨는 『결백하다면 신국장에게 확인을 요구해라. 신국장을 만나 봤느냐』는 보도진의 물음에 『만난 적 없다. 검찰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국장은 이날 『이씨가 전화를 여러차례 걸어왔으며 오늘 아침엔 직접 만났다』면서 『그가 「찾아가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 「모든 책임은 나 혼자 떠맡겠다」고 해 전모를 밝히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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