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입시지옥이 없는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30,40대 화이트 칼라들의 교육이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더 이상 아이들의 과외비를 대기도 힘들다는 게 가장 큰 이유. 아이들의 상상력을 죽이는 학교교육에 대한 염증도 한 몫을 차지한다.
이민알선업체 고려이주개발공사를 통해 지난해 해외로 이주한 4백여 가구 중 90%가 가장이 30,40대 사무직종사자인 화이트 칼라였다. 이 회사의 최석규부장은 『대부분 교육문제가 이민의 가장 큰 동기』라며 『이민간 사람들에 대한 현지조사 결과 한국에 있을 때보다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아이들의 과외비를 지출하지 않아 그만큼 가계에 주름살이 줄었다는 이가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5백여 가구의 해외이주를 알선한 현대이주공사의 최옥실이사는 『요즘엔 「잘 살아보겠다」 「능력을 펼쳐보겠다」는 등의 이유로 이민을 가는 이들이 줄어든 대신 교육 교통 환경 등에서 보다 나은 곳을 찾아 고국을 떠나는 이들이 오히려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큰 동기는 교육문제 때문이라는 것.
이민을 고려하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도 많다. 서울 도곡동에 사는 대기업 부장인 최모씨(45)는 『고1, 고2인 두 아이의 과외비를 대느라 아파트 두 채 중 하나를 팔고 1천만원까지 자동대출되는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지만 과외비 지출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이민을 생각하고 있지만 도피하는 것같아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을 갔다 다시 고국을 찾은 역이민자 중에는 교육문제 때문에 자녀는 외국에 두고 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30,40대의 화이트칼라들은 86년 6월 정부가 투자이민을 허락하면서부터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민을 가기 시작했다. 영주권을 취득하면 아이들이 고교 때까지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고 「입시지옥」이 없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최근 이들 국가에 교육이민이 몰리고 있다.
외무부와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외 이주자 수는 1만2천9백49명. 80년대 연평균보다 40% 정도 줄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이민자」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
『괴로웠습니다. 애들을 대상으로 미술 과외지도를 하면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늘 죄책감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예술마저 획일적으로 가르치는데 다른 것은 볼 것도 없지요. 애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뛰놀 수 있도록 이민을 결심했습니다』(임모씨·42·전예술고교사)
『아이들이 방과 후 집에 와서 학교 이야기를 할 때면 분통이 터졌습니다. 억지로 「팔방미인」을 만들려고 해요. 한과목이라도 잘못하면 용서를 안하죠. 애들이 한 가지만 잘해도 기를 펴고 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권모씨·39·전 모대기업 차장)
최근 뉴질랜드와 캐나다로 각각 이민을 떠난 두 가장이 남긴 말이다.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