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씨 死因]『몸속 혈액 절반 내출혈』

  • 입력 1997년 6월 5일 07시 58분


한총련 학생들의 폭행으로 숨진 李石(이석·23)씨는 어떻게 숨졌을까. 4일 밤 이씨의 시체를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姜信夢(강신몽)법의학부장은 『이씨가 온몸을 둔기로 맞아 전체 혈액(4∼5ℓ)의 절반에 가까운 2천㏄가량의 피하출혈로 숨졌다』고 밝혔다. 강부장은 『시신의 피멍상태로 보아 이씨가 허벅지 어깨 등 가슴을 제외한 온몸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두들겨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씨의 신체 표면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부위에서 피하출혈 흔적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는 4일 오후 5시 한양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한총련 공식기자회견 내용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 李准求(이준구)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이씨가 진술을 받던 학생의 목을 조르자 옆방에 있던 다른 학생 2명이 들어가 이씨의 두 손을 다시 묶고 몇 차례 가격해 주의를 줬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씨는 3일 오후 5시경 한양대 학생회관 5층에서 서성이다 3, 4명의 학생들에게 발견된 후 같은 층에 있는 교지자료실로 끌려가 두 손이 노끈에 묶인 채 주의차원에서 몇 차례 얻어 맞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씨로부터 경찰프락치라는 진술을 받았으며 조사를 마친 4일 새벽 2시경 학생 2명과 이씨가 함께 잠을 잤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주장처럼 「몇 차례의 가격」만으로 체격이 건장한 이씨가 몇시간 뒤인 오전 9시경 갑자기 숨을 멈추고 맥박만 약하게 뛸 정도까지 상태가 악화됐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소견. 부검전문의들은 단지 몇차례의 가격으로 온몸에 피멍이 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씨의 허벅지와 양어깨에서 발견된 색깔이 다른 피멍은 최소한 이틀 이상 계속해 「무릎을 꿇은 채」 둔기로 얻어맞은 흔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기자회견에서 이씨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같은 의문점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회피했다. 〈정위용·부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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