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보트피플/두 가족 탈출준비]

  • 입력 1997년 5월 14일 08시 52분


국가안전기획부는 13일 서해를 통해 귀순한 안선국 김원형씨 두가족의 가족관계와 선박 등 물품구입경위, 탈출경로 등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밝혔다. ▼ 가족관계 ▼ 두가족의 해상탈북에는 재미교포로 김씨의 쌍둥이 동생인 인형씨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40년 평남 순안에서 태어난 김씨형제가 헤어진 것은 50년 6.25전쟁때. 어머니 차순덕씨(83)가 이모 순기씨(75), 김씨 형제를 데리고 당시 주일한국대표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아버지 김길준씨를 찾아 평양 대동군에서 월남했다. 전쟁와중에서 김씨는 어머니를 잃어버려 홀로 북한에 남게 된 것. 월남한 어머니 등은 지난 76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으며 국내 친척으로는 서울 영등포구에 사촌형 일형씨(62)가 있다. 김씨 형제가 재상봉하게 된 것은 지난 90년 이모가 남편과 함께 평북 피현군의 시댁 가족을 방문했을때 원형씨 소재를 확인하게 된 것이 계기. 이어 어머니와 동생 인형씨가 91년 원형씨를 찾아 방북, 1만달러와 옷을 건네 주었고 이후 수시로 편지왕래와 함께 송금을 해왔다는 것. ▼ 탈출준비 ▼ 안씨와 김씨는 신의주의 같은 마을에 10여년간 함께 살아온 이웃으로 가족간에도 친숙한 사이. 소속은 달랐지만 같은 외화벌이 지도원이라는 신분때문에 두사람은 더욱 가까워졌고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의 마음을 터놓았다는 것. 특히 직업특성상 중국을 오가며 남한소식을 자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을 탈출하자는데 마음이 모아졌다. 두 사람은 이에따라 역할을 분담키로 했다. 김씨가 미국에 거주하는 동생으로부터 선박구입 자금을 지원받고 북한군 장교출신인 안씨가 탈출계획을 짰다. 이에따라 김씨는 지난 3월 안씨와 함께 중국 단동(丹東)으로 건너가 동생 인형씨에게 전화, 같은달 말 북경에서 동생을 만나 『남한으로 가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지난달 10일 김씨는 두아들 및 안씨와 함께 중국에서 다시 동생에게 전화를 건뒤 같은달 말 북경으로 온 동생으로부터 선박 구입자금으로 2만달러를 받았다. 탈출선박은 안씨와 친분이 있는 조선족의 주선으로 지난 3일 중국에서 5천5백달러를 주고 샀다. 또 남은 돈으로 신의주 장터에서 쌀 2백㎏과 옥수수 5백10㎏을 구입했다. 북한경비정에 발각됐을때 『외화벌이 일꾼인데 수산물과 교환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 탈출경로 ▼ 지난 4일 중국에서 구입한 선박으로 신의주로 귀환한뒤 북한해군 1669부대에서 선박등록을 했다. 단동에서 배를 구입할 당시 선명은 「요동호 3043」이었으나 북한군에 등록때 부여받은 선박번호판은 54120이었고 선박뒤에 이를 부착했다. 북한영해를 벗어나 산동반도쪽 공해상으로 나간뒤에는 원래 선명인 요동호 번호판을 붙여 항해했다. 탈출은 지난 9일 안씨가 김씨의 두아들과 함께 신의주에서 배편으로 먼저 출발했으며 철산군에서 합류키로 했다. 철산군을 합류지로 택한 것은 이곳이 안씨의 고향으로 부두에 아는 사람이 많고 경비가 허술했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10일 저녁 도(道) 안전국 화학대 트럭 운전사에게 3천원을 뇌물로 주고 자신의 남은 가족과 안씨 가족을 모두 태우고 철산으로 이동했다. 11일 오전 1시경 철산을 출발했으나 썰물때문에 대기하다 같은날 오전 11시경 산동반도쪽으로 남하했다. 이어 12일 오전 5시경 산동반도 공해상에서 남쪽으로 항해하다 낮 12시반경 인천쪽으로 항로를 바꾼뒤 오후 2시경 섬을 발견하고 백령도로 오인, 접근했다가 황해도 은율군 앞바다의 초도임을 확인하고 다시 남하했다. 〈황유성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