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비 좀 더 세게 뿌려주세요. 저 불이 사람을 삼키려고 해요』
13일 오전11시20분경 서울 서초구 내곡동 258 편도 4차로 도로에서 버스와 충돌, 불길에 휩싸이려는 르망승용차에 1백여명의 시민들이 달려들어 4명을 구출했으나 한명은 끝내 끌어내지 못해 숨지고 말았다.
대우통신 강남지사 직원 5명을 태운 르망승용차(운전자 김진·37)가 3차로를 달리다 차로를 바꾸는 순간 200번 좌석버스(운전사 이필원·33)의 좌측범퍼에 차량 뒷부분이 크게 부딪혔다. 승용차는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길가 가로수를 들이받아 앞유리창이 깨졌고 트렁크에선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사고가 나자 버스 승객과 지나가던 차량의 운전자와 행인들이 달려들어 차안에 있던 운전자 김씨 등을 차례차례 차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깨고 구부러진 차체를 힘을 합쳐 펴면서 구조작업을 벌이는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였다. 간신히 4명을 차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나 조수석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학무씨(40)는 발이 차체에 끼여 꼼짝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소형소화기를 뿌려대고 필사적으로 그를 끌어내려 했지만 불길은 점점 거세게 치솟았다.
버스운전사 이씨는 자신의 팔뚝에 불이 옮겨붙은 것도 모르고 다가오는 죽음에 몸을 떠는 이씨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러나 한 생명을 살리려는 이같은 노력과 희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체는 불길에 휩싸였다. 이씨의 「생명의 불꽃」은 그렇게 꺼져갔고 직장 동료들의 안타까운 비명과 통곡소리만이 울려퍼졌다.
4명의 고귀한 인명을 구해낸 시민들은 나머지 한명의 목숨을 끝내 살려내지 못하고 말자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고개를 떨군 채 한동안 빗속을 떠날 줄 몰랐다.
〈박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