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내란죄의 종료시기와 관련한 주장
원심은 국민의 저항과 이에 대한 피고인들의 폭동적인 진압은 제5공화국 정권이 1987년 6월29일 이른바 6.29선언으로 국민들의 저항에 굴복하여 대통령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간단없이 반복, 계속되었으며, 따라서 그 기간중의 모든 폭동적인 시위진압은 이 사건 범죄사실란에서 폭동으로 인정한 것들을 포함하여, 포괄하여, 하나의 내란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어서,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시작된 이 사건의 국헌문란의 폭동은 1987년 6월29일의 이른바 6.29선언시에 비로소 종료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내란죄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행위로서, 다수인이 결합하여 위와 같은 목적으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행 협박행위를 하면 기수가 되고, 그 목적의 달성 여부는 이와 무관한 것으로 해석되므로, 다수인이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을 하였을 때 이미 내란의 구성요건은 완전히 충족된다고 할 것이어서 상태범으로 봄이 상당하며, 따라서 원심이 이 사건 내란죄를 계속범으로 본 조처는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할 것이다.
한편, 내란죄는 다수인이 결합하여 범하는 집단범죄적 성질을 가지고 있고, 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어야 성립되는 범죄이므로, 그 구성요건의 요소인 목적에 의하여 다수의 폭동이 결합되는 것이 통상이며, 따라서 내란죄는 그 구성요건의 의미 내용 그 자체가 목적에 의하여 결합된 다수의 폭동을 예상하고 있는 범죄라고 할 것이므로, 내란자들에 의하여 애초에 계획된 국헌문란의 목적을 위하여 행하여진 일련의 폭동행위는 단일한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단순일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앞서 본 바와 같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는 일종의 협박행위로서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폭동에 해당하므로, 그 비상계엄 자체가 해제되지 아니하는 한 전국계엄에서 지역계엄으로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그 최초의 협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어서, 그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로 인한 폭동행위는 이를 해제할 때까지 간단없이 계속되었다 할 것이고, 이와 같은 폭동행위가 간단없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전후하여 그 비상계엄의 해제시까지 사이에 밀접하게 행하여진 이른바 예비검속에서부터 정치활동 규제조치에 이르는 일련의 폭동행위들은 위와 같은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동행위를 유지 또는 강화하기 위하여 취하여진 조치들로서, 위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로 인한 폭동행위와 함께 단일한 내란행위를 이룬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위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포함한 일련의 내란행위는 위 비상계엄이 해제된 1981년 1월24일에 비로소 종료되었다고 할 것이다.
한편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아도, 피고인들이 이 사건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원심 판시와 같이 이에 항거하는 시위를 진압한 피고인들의 행위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가지고 한 것으로서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폭동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므로, 6.29선언시까지 원심판시와 같은 각종 시위가 있었다고 하여 그 때까지 피고인들의 모든 시위진압이, 이 사건 범죄사실란에서 폭동으로 인정한 것들을 포함하여, 포괄하여 하나의 내란죄를 구성한다고 판단한 원심의 조처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결국 원심이 위와 같이 내란죄를 계속범이라고 본 점과 내란죄의 종료시기를 1987년 6월29일 이른바 6.29선언시로 본 점은 상고이유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잘못이라 아니할 수 없으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위 피고인들의 내란죄 등에 대한 공소시효가 5.18특별법 제2조에 따라 1993년 2월25일부터 진행한다고 할 것이어서, 위 피고인들에 대한 내란 등 사건의 공소는 그 공소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기소되었음이 명백하므로, 원심의 위와 같은 잘못은 판결에 영향이 없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