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친구가 본 황장엽]뛰어난 암산실력「과묵한 천재」

  • 입력 1997년 2월 13일 20시 33분


「전자계산기보다 빨리 암산하던 과묵한 천재」 「생쌀과 한 컵의 물만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기인」. 黃長燁(황장엽)북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의 평양상업학교 제자들이 기억하는 「스승 황장엽」의 모습이다. 황위원장은 지난 46년부터 48년까지 3년간 평양상업학교에서 주산과 암산, 경제학을 가르쳤다. 15회 졸업생인 吳貞柱(오정주·66·서울서대문구북아현동)씨는 『점심시간이면 한 웅큼의 생쌀을 씹은 뒤 한 컵의 물과 함께 후루룩 마시곤 하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역시 15회 졸업생이며 평양상업학교 동창회부회장인 崔在京(최재경·67·서울 종로구 종로5가)치과원장은 『황선생은 머리모양이 참외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아 「까꾸리 참외」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지난 38년부터 42년까지 평양상업학교 재학시절 5년내내 같은 반 친구였던 金潤德(김윤덕·75·서울관악구신림2동)씨는 『장엽이는 신화적인 주판선수로 전국주판대회의 상을 휩쓸었다』며 『1학년때 몸이 아파 결석이 잦았는데도 2학년에 올라가 밤잠을 안자고 공부를 해 곧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집념이 강했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학창시절에는 좌파이론에 전혀 관심이 없던 장엽이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됐다는 소릴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94년5윌 귀순한 姜成山(강성산)정무원 총리의 사위 康明道(강명도)씨는 황위원장을 『무척 논리적이고 빈틈없는 성격탓으로 대인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91년5월 콩고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 신분으로 귀순한 高英煥(고영환)씨는 『모스크바 유학시절 「식당과 화장실 가는 시간을 빼고는 책만 팠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학구파로 알려졌다』며 『그러나 깐깐한 사람으로 알려져 아랫사람들이 모시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홍성철·전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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