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누적 체납액 122조 달하자
‘관리 부실’ 비난 우려해 축소 조작
고액 체납 소멸시효 기준 바꾸는 등
2021∼2023년 1.4조원 부당 탕감
국세청 제공
국세청이 편법을 동원해 체납된 세금을 탕감해준 사실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드러났다. 국세체납액이 갈수록 늘어나자 체납액을 부실 관리한다는 비판을 우려한 감사원이 편법을 동원해 체납액을 줄였다는 것. 국세청은 실제보다 과다하게 산출된 장기 체납액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고 밝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 고액체납자들을 중심으로 부당한 세금 탕감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 ‘체납액 100조 맞추기’에 1조4000억 원 부당 탕감
감사원에 따르면 국세청은 2020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누적 체납액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으면서 이듬해부터 누적 체납액을 국세통계포털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임시 집계한 누적 체납액이 12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자 ‘누적 체납액 관리가 부실하다’는 비난을 우려해 2021년 6월까지 누적 체납액을 100조 원 미만으로 줄인 뒤 공개하기로 계획했다.
100조 원 목표는 합리적인 근거 없이 설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국세청 국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누적 체납액 축소 목표 설정을 위한 (국세청장) 보고 과정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120조 원, 110조 원, 100조 원, 90조 원 중 100조 원을 골랐다”고 했다. 당시 국세청장은 김대지 전 청장이었다.
이후 국세청은 각 지방청에 누적 체납액 감축 목표를 일률적으로 20% 줄이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또 목표 달성을 위해 누적 체납액 축소 실적을 인사에 영향을 주는 직원 성과평가 항목에 반영하고 각 지방청 및 일선 세무관서별 실적 순위를 공개했다.
체납액을 줄이기 위해선 세금을 받아내야 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국세청은 각 지방청에 장기 압류 재산 및 고액체납자를 선별하고, 소멸시효 정비를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5억 원 이하는 5년, 5억 원 이상은 10년인 세금의 법정 소멸시효가 지나면 체납 세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체납 세금 소멸시효 계산 기준을 바꾸는 방식으로 2021~2023년 동안 1조4268억 원의 세금이 부당하게 탕감됐다.
이번 감사에선 국세청이 고액체납에게 특혜를 준 사례도 드러났다. 채납액 감축 과정에서 서울지방국세청은 무기중개 관련 대기업 회장인 고액 체납자에게 에르메스 등 명품 가방 30점과 로마테콩티 등 고급 와인 1005병(시가 4억8000만 원 상당) 등의 압류를 해제해줬다.
● 국세청 “체납 관리 미흡 때문에 발생한 일”
감사원은 “김 전 청장에 대해 “국세청장으로서 부당한 누적 체납액 축소 계획 및 목표 설정에 관여했다”면서 “무리하게 추진된 누적 체납액 축소 업무가 체납 징수 업무 담당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음을 확인했음에도 이를 그대로 뒀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 전 청장은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기억나지 않는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세청은 2020년 임시로 집계한 누적 체납액이 실제보다 과다하게 산출됐다고 밝혔다. 폐업했거나 체납자 재산이 부족해 당장 세금을 걷을 수 없으면 ‘정리 보류(체납세금 징수를 일시 보류하는 처분)’를 해야 하는데, 이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누적 체납액이 장기간 방치됐다는 것이다. 2020년 이전까지 체납 세금이 사실상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돼 왔다는 뜻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2020년 국정감사에서 누적 체납액을 공개하라고 요구받은 뒤, 그동안 미흡했던 체납 관리 자료를 정리 공개하는 과정에서 이번 문제가 벌어졌다”며 “조직적으로 누적 체납액 통계를 줄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에게 세금 체납 소멸을 독려하는 과정에서는 체납액 감축 목표를 일률적으로 할당한 데 대해선 국세청 관계자는 “적극적인 업무와 관리를 위해서는 지표가 필요하다”면서도 “이런 부분이 직원들에게 부담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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