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고 가져야 한다’…尹의 TK [장관석의 용: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2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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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에서는 침묵 속에도 온갖 썰이 넘쳐납니다. 동아일보 대통령실팀 기자들이 함께 쓰는 디지털 코너 [용:썰]은 대통령실을 오고가는 말의 팩트를 찾아 반 발짝 더 내딛어 봅니다.
첫 서울 출신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  검찰총장을 사직한 뒤 제삼지대 행보를 이어가다  2021년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래 그의 핵심지지 기반은 줄곧 영남, 그중에도 대구·경북(TK)이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본경선 선거인단 명부에서도 영남권은 39.7%, TK는 21.03%에 이른다. 집권 여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의 핵심 텃밭이다.
● 尹, 盧 서거에 “임명권자 돌아가셨는데 조문해야”
그와 TK의 인연은 1994년 대구지검 초임 검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부장검사가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다. 윤 대통령의 늦깎이 결혼 주례를 섰다. 정 전 총장은 지난해 대선 하루 전날 가진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대구 하숙집 부부를 인터뷰한 언론 기사를 거론하며   “(사법시험) 9수 끝에 대구에서 근무하는 아들을 지켜보던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겠느냐”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구지검 특수부장으로 두 번째 인연을 쌓는다. 그 시절에서부터 후배들을 대동하고 대구 거리를 거닐며 “야 저기 말이야 내가 그때”라며 옛 기억을 꺼내 들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그는 대구에 근무 중이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한 인사의 기억.  “우리 임명권자가 돌아가셨는데, 조문하는 게 맞다.” 

봉하마을 직접 조문을 타진하던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임명권자의 서거에 조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10월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주지청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13년 10월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당시 여주지청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尹, “잘 먹고 잘 살려 사법시험 공부한 X들의 한계” 
세 번째 인연은 그가 엘리트 검사 코스를 밟던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 말씀드리겠습니다”로 시작된 2013년 국정감사장의 폭로 이후다. 

2014년 대구고검에 좌천된 그 시절.  보수 정권 시절 법무부와 검찰 고위직들은 그를 불편해했다. 그와 친한 검사들의 동향은 당시 국가정보원 IO 들의 주요 점검 사항 중 하나로 알려졌다. 국정원 댓글 사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사퇴설은 더 비중 있게 나돌았다. 

그는 당시 불편한 속내를 숨기려는 듯 더 과감하게 말했다.  그래서 뇌리에 더 남아있다.

“한국 사회에서 잘 먹고 잘살려고 사법고시(사법시험) 준비한 X들의 한계다. 국가정보원법 위반이 인정되는데,  공직선거법 위반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건 모순이다. ”

“기대도 안 했다. 전부터 측근 비리를 기소하면 전부 ‘호의적 거래’니 뭐니 그래서, 무죄를 쓰더라. 기소할 때부터 법정에서 이걸로 ‘잔칫상’을 벌이겠다 싶은 게 있다.”

그는 당시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잘못한 사람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내가 왜 그만두느냐”, “(사의 표명) 지라시가 사실이면 우리나라가 몇 번은 뒤집혔다”라고도 했다.

멀리서 그를 보면 슬슬 피하던 사람들도 생겨났다. 대신 윤 대통령은 이 시기 그를 꾸준히 챙기던 TK 지인들과 깊은 인연을 쌓아간다. 이 시기 축적된 인맥들은 이후 그의 정치 행보에 적지 않은 인재풀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尹 “TK, 제 정치적 고향”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퇴임하기 직전 방문한 곳도 대구다. 그는 2021년 3월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하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 완판’으로 헌법정신에 크게 어긋난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제가 늦깎이 검사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초임지고, 이곳에서 특수부장을 했다”. “몇 년 전 어려웠던 시기에 저를 따뜻하게 품어준 고장이다. 5년 만에 왔더니 감회가 특별하고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껏 감흥을 나타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는 모습도 보인다.  뉴시스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윤 대통령의 세리머니를 따라 하는 모습도 보인다.  뉴시스
대선 레이스에서도 그는 TK만 오면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대선 주자 시절이던 2021년 7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처에 묵묵히 자신을 희생했던 대구 시민들을 향해 “초기 확산이 대구가 아니라 다른 지역이었다면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계속된 대선 레이스에서 윤 대통령은 경북 안동 중앙시장, 포항 죽도시장, 대구 서문시장 등 TK 곳곳에서  특유의 ‘어퍼컷’을 선보인다.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을 최고조 수위로 끌어올린 것.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죽도시장을 찾아 “다시 뵙게 돼서 반갑다. 대구·경북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대구·경북이 제 바로 정치적 고향”이라고 했다. 총장 퇴임 전 “고향에 온 것 같다”라던 그는 “TK는 정치적 고향”으로 표현 수위를 끌어올렸다.
●  TK와 접점 없는 ‘윤핵관’
TK는 대선과 6·1지방선거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다. 하지만 국면마다 출렁인다. 사적 채용 논란이나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과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논란 등 주요 국면에서 ‘콘크리트’처럼 지지하는 양상을 보이지는 않는 것. 한국갤럽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1월 셋째 주에 긍정 56%, 부정 37%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대 개입 논란이 불거진 뒤인 2월 둘째 주에는 긍정과 부정 모두 45%를 기록한다.  여권 관계자는 “정치입문 9개월 만에 보수정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대통령으로선 핵심 지지기반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출범 후 윤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해 온 ‘윤핵관’은 TK와 별다른 인연이 깊지 않은 상황. 대표적 윤핵관인 측근 장제원 의원의 지역구는 부산, 권성동 의원은 강원이다. 다른 관계자는 “정권 교체 후 권력의 선봉에 선 인물들과 영남의 일체감 또는 정서적 결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며 “정치적 지향이 다른 인사들을 거칠고 공격적인 자세로 밀어붙이는 모습들은 특히 보수 정서 층에서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기 쉬운 장면들”이라고 했다. 

지난해 가을 김무성 전 의원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서 내정 철회하고,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로 앉힌 것에는 이 같은 정서도 감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빈틈을 이준석 전 대표는 예리하게 파고들고 있다. 지난해 직무 정지 국면 당시 이 전 대표는 경북 칠곡을 방문해 “경북 칠곡 현대공원 묘지에 계신 증조할아버지, 큰할아버지 그리고 청구공원 묘지에 계신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께 오랜만에 추석을 앞두고 인사를 올렸다”라고 했다. 이 전 대표 역시 TK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해 8월 경북 칠곡군에 있는 할아버지 묘소를 조문하는 모습. 그는 페이스북에 “현대공원묘지에 계신 증조할아버지, 큰할아버지 그리고 청구공원묘지에 계신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께 오랜만에 추석을 앞두고 인사를 올렸다”고 썼다. “오랜 세월 집안이 터전 잡고 살아왔던 칠곡에 머무르며 책을 쓰겠다”고도 했다.  이 전 대표 페이스북.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해 8월 경북 칠곡군에 있는 할아버지 묘소를 조문하는 모습. 그는 페이스북에 “현대공원묘지에 계신 증조할아버지, 큰할아버지 그리고 청구공원묘지에 계신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께 오랜만에 추석을 앞두고 인사를 올렸다”고 썼다. “오랜 세월 집안이 터전 잡고 살아왔던 칠곡에 머무르며 책을 쓰겠다”고도 했다.  이 전 대표 페이스북. 
● TK에 공들여온 안철수
안 의원은 지속해서 TK에 공을 들여왔다. 코로나19 초기 시절 의사로 대구를 방문해 장기간 의료 봉사 활동에 몸을 던졌다. 당시 집권 여당에서 “봉쇄” 발언이 나오던 그 시절, 코로나 진료로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은 지역인들에 각인된 그의 대표적 이미지다.  2022년 2월 단일화 국면 속에서도 TK 지역을 집중적으로 찾았다. 포항에서는  “포스코 지주사는 포항에 있어야 한다”며 지역 현안에 대한 언급을 이어갔다.  그의 정치 여정을 두고 “옷 색깔(정당)을 바꾸는 데 10년이 걸렸다”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안 의원의  2017년 대선 득표율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막말 프레임’에 갇혀있던 때이긴 하지만, 한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보수층 흡인력을 보여줬다. 이 시기 문 후보 측의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이 “극우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라고 발언한 것도 보수층을 결집해 ‘안철수 표’를 갉아먹겠다는 계산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여기에  ‘박지원 상왕(上王)론’ 공세까지 나오면서  안 의원의  확장세는 꺾인다.

국민의당 대표였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2020년 3월 대구 중구 대구동산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진료를 마친 뒤 땀에 젖은 채 음압병동을 나오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당 대표였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2020년 3월 대구 중구 대구동산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진료를 마친 뒤 땀에 젖은 채 음압병동을 나오고 있다.  뉴시스. 
● 3·8전당 대회에서는
여권은 이번 3·8 전당대회 국면에서 확실한 교통정리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윤핵관이 가져오는 부정적 이미지에 더해 인수위원장을 지낸 안철수도 대통령과 사이가 좋고, 또 잘 할 수 있는 사람 아니냐는 우호적 정서가 지역 정서에  깔려 있었다”라고 했다. 이에 김기현 후보가 핵심 지역에서 확고한 지지를 받기 위해선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을 보다 명징하게 발신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 대통령실 참모들까지 가세해 안 의원을 강하게 지적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위대한 지도자가 이끈 위대한 미래 국민과 함께 잊지 않고 이어가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현직 대통령의 박 전 대통령 생가 방문은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이 설립한 경북 구미의 금오공대까지 찾아 방문했다. 경북 칠곡의 할머니들이 만든 ‘칠곡할매글씨체’를 글꼴로 사용하고, 이들을 대통령실로 초청하는 것 역시 TK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것이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TK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하며 힘을 실어줬다.  이번 전당대회는 영남과 TK가 누구를 선택할지, 그리고 수도권 비중이 커지며 수면 아래 변화 조짐이 일고 있는 보수정당의 ‘현재 스코어’를  관측할 기회다. 하나 더. “민주당의 뜻있는 세력과 함께 할 것”이라던 윤 대통령의 구상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지는  ‘포스트 전당대회’의 관전 요소다.

장관석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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