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론 美-강경 北 사이… 文정부 ‘대화 구상’ 점점 힘잃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바이든, 트럼프식 보여주기 거부
北, 대화 강조한 文대통령에 막말
정부 “강한 유감”속에도 ‘대화’ 무게
SLBM발사 등 北 추가도발에 촉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의향이 없다고 백악관이 29일(현지 시간) 밝힌 것은 북한의 무력시위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에 “싱가포르 북-미 정상 합의가 북-미 대화의 좋은 시발점”이라고 전달한 것으로 30일 알려졌지만 정상회담 중재 시도는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탄도미사일 발사로 ‘바이든 떠보기’에 나선 북한도 바이든 대통령이 경고장을 보내자 한국을 맹비난하는 형태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에 대해 “탄도미사일”이란 표현을 쓰지 않으며 대화를 강조했는데도 오히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장을 내세워 “미국산 앵무새” “뻔뻔스러움의 극치” “철면피” 등 거친 표현을 동원해 막말 비난을 하고 나선 것.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남북 관계 복원을 내세웠지만 강경한 북한과 원칙적 접근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미국 사이에서 대화 재개 구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는 회담 재개를 위해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회담 당시 테이블에 올랐던 ‘영변 핵시설 폐기-주요 대북제재 해제’의 재검토를 미국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놓고 미국 측이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벌써부터 한미 간 이견이 표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김여정은 30일 담화에서 “한국도 탄도미사일을 쐈다”고 주장하기 위해 “북과 남의 같은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한 탄도미사일 시험”이라고 했다. 25일 발사한 미사일이 안보리 결의 위반인 탄도미사일이라는 점을 스스로 밝힌 것. 문 대통령은 물론이고 외교안보 부처 모두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탄도미사일’ 표현, ‘안보리 결의 위반’ 언급도 못 하고 있던 정부는 머쓱해진 셈이 됐다. 군은 김여정 담화 뒤에도 “탄도미사일에 무게를 두고 분석 중”이라고 했다.

통일부는 김여정의 막말 담화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 어떤 순간에도 서로를 향한 언행에 있어 최소한의 예법은 지켜져야 한다”고 비판했지만 “남북 대화의 흐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일관되게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이 다음 달 15일 김일성 생일 등을 전후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 추가 도발에 나설 경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좌초할 수도 있다.

대북 원칙론에 기반한 정책 수립의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추진하되 실무 협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섣부른 북-미 정상회담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톱다운 대신 보텀업’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백악관이 북-미 정상회담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29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유엔 주재 미국 대표부와의 화상면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탄도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행위로, 미국과 동맹 및 파트너들의 규탄 대상”이라고 했다. 유엔 안보리는 31일(한국 시간) 전체회의에서도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원칙론#미국#강경#북한#대화구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