敵 전투기 ‘패닉’ 일으키는 ‘전자전기’ 도입 좌초 위기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 2021-02-28 15:04수정 2021-02-2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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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장 효용성 낮다? … “KIDA 부정적 결론 내려”
미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電子戰機). [사진 제공 · 미국 공군]
2월 중순 공군과 국내 방산업계에 충격적 소식이 전해졌다. 공군의 오랜 숙원 사업인 전자전기(電子戰機) 도입이 소요검증 끝에 ‘도입 불가’ 통보를 받았다는 것. 소요검증이란 각 군이 제기한 무기체계·장비 소요의 필요성을 검증하는 작업으로, 국방 싱크탱크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수행한다. 익명을 원한 군 관계자는 “KIDA 분석 결과 한반도 유사시 전장에서 전자전기의 효용성이 낮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우리 군은 전자전기가 없어 한미연합훈련 때 미군의 지원을 받는다. 도입이 시급한데 왜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선진 공군’ 조건, 전자전기 보유

현대전에서 전자전기는 전투기 수십 대에 해당하는 전력을 발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전기 보유 여부가 ‘선진 공군’의 조건이 될 정도다. 전자전기는 말 그대로 전자전을 수행하는 항공기다. 전자전 영역은 대단히 광범위하다. △적 레이더 등 전파 사용 장비를 무력화하는 전자 공격(Electronic Attack 또는 Electronic Counter Measure) △적의 전자 공격을 막는 전자 방호(Electronic Protection 또는 Electronic Counter-Counter Measure) △전자 공격·방호를 위해 전자 신호를 수집·분석하는 전자 지원(Electronic Support 또는 Electronic Support Measure) 등으로 나뉜다.

전자전은 어떻게 이뤄질까. 미군의 대표 전자전기 EA-18G 그라울러(Growler)가 중국 J(젠)-20 전투기를 상대로 전자전을 수행한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평시 서해 상공에 RC-135V/W/U 등 전자 정찰기를 띄워 중국 J-20 전투기가 사용하는 레이더와 통신장비의 전파 정보를 분석·복제한다. 복제한 전파 정보는 전자전기 EA-18G 그라울러에 저장된다. 만약 인근에 실제 비행 중인 J-20 전투기의 레이더 전파가 감지되면 그라울러는 교란에 나선다. 기체에 장착된 재머(jammer)로 J-20 전투기 레이더에 방해 전파를 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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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는 전파를 쏜 뒤 표적에 맞고 나온 반사파를 수신한다. 그리고 해당 데이터를 처리해 표적을 식별한다. 레이더 수신기에 자신이 쏜 전파의 반사파가 아닌 다른 전파가 들어오면 레이더와 분석 컴퓨터는 ‘패닉’에 빠진다. 레이더 탐지 결과를 나타내는 조종석의 디스플레이는 까맣게 먹통이 된다. 레이더를 먹통으로 만든 것과 같은 원리로 적 통신장비도 무력화할 수 있다.

전자전기 위력은 미군의 실전 경험으로 증명됐다. 1990년 걸프전 당시 미 공군은 EF-111, EC-130H 전자전기로 이라크 공군과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코소보 공습(1999), 이라크 침공(2003), 리비아 공습(2011), 시리아 공습(2018) 등 여러 전투에서 전자전기가 맹활약했다.

우리 공군도 오랫동안 미국으로부터 전자전기 도입을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전자전기에 장착된 전자전 포드엔 미국이 그간 수집해온 세계 각국 레이더·통신 장비의 전파 특성 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극히 민감한 전략자산인 것이다. 미국 외에 EA-18G 그라울러를 도입한 나라는 호주가 유일하다. 그마저도 기체만 호주 공군이 운용한다. 핵심 장비 재머는 평시에 미군이 보관하다 호주군이 필요로 할 때만 미군 측 관계자의 감시하에 제공된다.

전자전 정보 공유 꺼리는 美

한국 사정은 어떨까. 일단 미국은 현용 장비 AN/ALQ-99를 2020년대 중반부터 도태시킬 전망이다. 차세대 장비 NGJ(Next Generation Jammer) 도입이 예정돼 있다. 다만 도태 장비조차 한국은 구입하기 어려워 보인다. 구 모델이라도 재머엔 미군이 확보한 전자전 정보가 대부분 들어 있다. 미국은 한국을 통해 해당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우리 군은 미군 전자전기 전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다.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될 때마다 공군은 미군 전자전기 지원을 받고자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전자전기 1대로 아군 공군기 수십 대는 물론, 조종사들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군이 오래전부터 전자전기 독자 보유를 추진한 이유다. 공군의 열망은 현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을 추진하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전자전기 도입은 현실로 다가올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선행연구로 2조5000억 원 예산을 들여 2031년 전자전기를 도입한다는 구체적 목표까지 도출했다. 하지만 KIDA의 소요검증으로 도입이 ‘불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전자전기는 좌초 위기를 맞았다. 우리 공군과 전문가들은 여러 차례 전자전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미군이 전자전기를 수십 년간 운용하며 거둔 성과도 도입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시급한 전략자산 도입에 KIDA가 왜 퇴짜를 놨는지 아직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우리 공군은 진짜 ‘선진 공군’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또 한 번 잃을지도 모른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78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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