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진지한 외교’ 촉구한 비건, 숨가쁜 고별 행보 후 출국

  • 뉴시스
  • 입력 2020년 12월 12일 05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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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일 방한 마쳐…트럼프 행정부서 마지막 출장
"北, 외교 재개 강력 촉구…남북미 함께 노력해야"
"노력이 눈앞에서 허물어졌을 때 좌절 순간 함께"
"성공하려면 미국, 한국, 북한이 함께 노력해야"

트럼프 행정부 임기 종료를 40여일 앞두고 한국을 방문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4박5일간의 고별 행보를 마치고 12일 미국으로 떠났다.

2년 4개월 간 대북 실무 협상을 총괄해 왔던 비건 부장관은 협상에 대한 소회와 공과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마지막으로 북한을 향해 대화 테이블에 복귀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바이든 행정부에는 지난 2018년 하노이에서 사상 처음 이뤄진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이어갈 수 있도록 남·북·미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노딜’ 하노이 회담 “실패 아냐…北 협상팀 권한 없어 한계”

비건 부장관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8월 미 대북특별대표에 임명돼 스웨덴 스톡홀름 남·북·미 실무협상(2019년 1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2019년 2월), 판문점 남·북·미 회동(2019년 6월), 스웨덴 2차 실무협상(2019년 10월) 등 북미 협상을 총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 국무부 2인자인 부장관으로 승진한 후에도 대북특별대표 자리를 유지하며 진정성을 보였지만 북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게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한국을 찾아 “우린 여기 있고, 북한은 우리에게 접촉할 방법을 알고 있다”며 대화 신호를 발신했으나 북한은 응답하지 않았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 10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는 북한에게 70년의 반목을 뒤로 하고 새롭게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다고 했지만 북한은 대화와 관여 대신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데 주력했다”고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그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이어지지 못한 원인으로 북한 협상팀의 문제를 거론했다. 비건 부장관은 하노이 회담에 대해 “실패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문제점은 카운터파트가 비핵화에 대한 권한을 위임 받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톱다운(Top dowm) 방식 협상의 한계를 지적했다.

북미 정상이 2018년 6월 사상 최초로 이뤄진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추진 등에 대한 역사적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실행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에 대한 입장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렬됐다.

다만 비건 부장관은 “우리가 합의한 것을 진전시키지 못했지만 싱가포르 합의의 잠재력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각국 대표들이 권한을 갖고, 지속적으로 만나 로드맵과 합의한 목표를 만들고, 지도자들이 확고하게 확정짓는 것이다. 이것이 2년 반 동안의 교훈이다”라며 싱가포르 합의의 진전을 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건 부장관은 북한을 향해선 도발이 아닌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그는 내년 1월 제8차 당대회를 언급하며 “우리는 북한이 지금과 그 사이의 시간을 이용해 서둘러 외교를 재개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며 “북한과 미국이 지속적인 관여와 어려운 절충이 필요하지만 막대한 보상을 받는 진지한 외교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닭 한마리’ 만찬에 외교·안보 고위인사 물밑 접촉

비건 부장관은 내년 1월 20일 임기를 마치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간 외교·안보 고위인사들을 연달아 접촉하면서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비건 부장관은 9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와 조찬을 시작으로 외교청사를 방문해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한미 외교차관 회담,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가졌다.

지난 10일에는 국내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공개 강연을 갖고, 그간 북미 협상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쏟아냈다. 이후 한국을 방문 중인 켄트 해슈테트 스웨덴 한반도 담당 특사와도 면담했으며,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조찬 회동을 비롯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서훈 국가안보실장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북핵수석대표 협의에 앞서 그간의 궤적에 대해 “리더십, 동맹, 우정의 여정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규범과 과거의 행동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정상 차원의 관여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비전을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한미는 매 순간 나란히 서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진전시키고, 북한에 안정과 번영을 가져오고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늦은 밤의 통화들, 세계 곳곳으로의 출장, 돌파구를 마련했을 때 성공의 순간과 우리의 노력이 눈앞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의 좌절 등 모든 것을 함께 했다”며 협상 파트너인 이 본부장에 대해서도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외교부는 비건 부장관이 머무는 사흘 연속 이도훈 본부장(9일), 최종건 차관(10일), 강경화 장관(11일) 주재 만찬을 마련해 한미 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대한 노력에 사의를 표했다. 최 차관은 비건 부장관이 한국에 올 때마다 즐겨찾는 단골 식당인 ‘닭 한마리’ 식당을 통째로 빌려 대접했고, 강 장관은 협상팀을 외교공관으로 초청해 격려했다.

내년 초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새로운 대북 협상팀이 꾸려지고 전략이 마련되기까지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가에서는 그간 미 정권 교체기 북한이 전략적 도발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을 써왔다는 점에서 내년 1월 8차 당대회를 비롯한 북한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는 비건 부장관을 향해 짙은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초기에 긍정적인 대북 메시지를 발신해 대화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비건 부장관은 아산정책연구원 강연을 마치며 “내 임기는 곧 끝난다. 새로운 팀이 들어설 것이고, 그들에게 모든 경험과 힘들게 얻은 약간의 지혜를 공유할 것”이라며 차기 행정부에 “전쟁은 끝났고, 분쟁의 시간도 끝났다. 평화를 위한 시간이 왔다. 우리가 성공하려면 미국, 한국, 북한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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