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방한한 왕이, ‘한미’ 견제하며 요구사항만 ‘줄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7일 21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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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이 미국의 반 화웨이 전선에 대항해 중국이 만든 ‘글로벌 데이터 안보 구상’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했다. 반면 “남북이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이라며 한국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2박 3일의 방한기간 동안 여권의 대대적인 환대를 받은 왕 부장이 한한령(限韓令) 해제 등 한국이 기대하는 ‘선물’은 최소화하면서 미중 갈등과 관련한 요구사항을 쏟아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 ‘한미 밀착’ 견제하며 요구조건 쏟아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6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26/뉴스1 © News1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6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11.26/뉴스1 © News1


중국 외교부는 27일 왕 부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전날 회담 결과에 대해 “한국 측이 중국이 제안한 ‘글로벌 데이터 안보 구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데이터 안보 구상은 9월 왕 부장이 미국의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퇴출 조치에 반발해 자체적으로 데이터 안보에 관한 국제 표준을 제정하겠다며 내놓은 구상이다.

왕 부장의 제안은 미국이 주도하는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하지 말라는 압박으로 해석된다. 5G(세대) 이동통신 등 IT 분야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갈등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 왕 부장은 회담에서 “함께 평화롭고 안전하며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인터넷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국 외교부는 또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 “풍부한 성과를 거뒀다”며 10가지 합의사항을 방한성과로 부각했다. 이 중에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협력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적극 추진 등도 담겼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미일 공조를 통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이어 한중일 FTA를 통해 미국의 봉쇄정책 무력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트위터로 “장진호 전투가 70주년을 맞이했다”며 “중공군 12만 명의 공격으로 전사한 유엔군과 한국군 병사들을 기린다”며 중국을 견제했다.

● ‘A급 외교일정’ 보낸 왕이, 한국 관심사에 ‘유보적’


왕 부장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한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 등 한국의 주요 관심사에 대해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전날 강 장관과의 회담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 접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와 만찬을 가진 왕 부장은 27일에도 핵심 여권인사들과 두루 만나며 광폭 행보를 보였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 특보와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민주당 윤건영 의원 등과 함께 조찬을 가진 뒤 박병석 국회의장과도 만났다. 이틀 만에 의전서열 1, 2위인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물론 전 여당 대표와 대통령 측근 등을 모두 만나고 돌아간 것.

왕 부장은 이날 박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남북 양측이야말로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이라며 “한반도의 운명은 남북 양측의 손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한반도의 중요한 이웃으로 계속 건설적인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지만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은 표명하지 않은 것.

한한령 철회에 대해선 “지속적인 소통을 희망한다”며 즉답을 피한 대신 “한국이 민감한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며 기존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철수 주장을 되풀이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모두 내놓고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는 핵심 인사들까지 만나고 돌아간 A급 외교 일정”이라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전 한중 양자관계를 강화하면서 한국이 미국에 경도되는 것을 막으려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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