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기준’ 당정 갈등 폭발… 홍남기, 대통령 반려에도 “사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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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 “대주주 기준 현행 10억 유지… 나는 반대의견 냈다” 여당에 반기
靑 “文대통령 바로 반려-재신임”, 洪 “후임자 올때까지 최선다할것”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으나 일단 반려됐다. 주식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요건을 현행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추는 방안이 민주당의 반대로 유예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것. 경제수장이 여당의 재정주도형 경제정책에 재정건전성 유지 등을 이유로 반기를 든 데다 사의 표명 과정을 놓고 청와대와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어 파장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홍 부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식 양도세 대주주 요건 변경 유예에 대해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며 “책임을 지고 오늘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홍 부총리가 사의 표명 사실을 밝히자 청와대는 즉각 “홍 부총리는 오늘 국무회의 직후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으나 대통령은 바로 반려 후 재신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이후 기재위에서 “(반려 사실은) 국회에 오느라 듣지 못했다”며 청와대와 다른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후임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공직자”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반려에도 사퇴하겠다는 뜻을 고수한 것.

논란이 이어지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자료를 내고 “(면담에서)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으나 대통령은 격려하면서 신임을 재확인하고 반려했다”고 재확인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홍 부총리의 사의에 문 대통령은 ‘당정청 간 조율 과정에서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건 다 조정해 나가는 것이니 열심히 잘하시라’고 했다”고 전했다.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은 4월 총선 이후 긴급재난지원금과 통신비 지원 전 국민 확대, 재산세 인하 대상 확대 등을 두고 당정 갈등이 거듭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가 두 번이나 공개적으로 문 대통령의 반려 의사를 밝혔는데도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한 만큼 연말 개각에서 교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까지 ‘경제 투톱’ 동시 교체 가능성도 나온다. 여당 관계자는 “한두 번도 아니지만 이번 공개 반발은 선을 넘었다”며 교체를 기정사실화했다.

▼ 洪 “사표 반려 못들었다”… 靑 “대통령이 직접 면담하며 재신임”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건 의원님 개인 판단이고요. 그냥 아무 일 없이 가기에는 제 스스로가 참을 수 없었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자신의 사의 표명에 대해 “대단히 무책임하다”고 지적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의 비판에 이같이 말했다. 4월 총선 이후 긴급재난지원금과 통신비 지원 전 국민 확대, 재산세 인하 대상 확대 등 누적된 여당과의 갈등 속에 작심한 듯 맞받아친 것. 경제수장인 경제부총리가 선거지형을 고려한 여당의 정책 드라이브에 반발해 공개 사의를 표명하면서 당청의 재정주도형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홍남기 “사의 반려 못 들었다” vs 靑 “대통령이 직접 면담해 반려”

청와대에 따르면 홍 부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화상으로 열린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하기 위해 청와대를 찾았다.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그동안 혼선을 야기해 죄송하다’는 취지로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은 ‘당정청 간 조율 과정에서의 갈등은 다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열심히 잘하라’며 사의를 반려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같은 날 오후에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홍 부총리는 “정부로서는 조세공평 차원에서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3억 원 그대로 가야 한다고 봤으나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을 감안해 10억 원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며 “(이에) 제가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특히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의 사표 반려에 대해서도 “국회에 오느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기재위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사의 표명을 누구에게 했느냐’는 질문엔 “(내가 사표를) 타이핑 쳐서 전달했다. 인편으로 보냈다”고 했다. 청와대 설명대로라면 문 대통령의 반려 의사를 직접 전해 듣고도 이를 밝히지 않으면서 사퇴 의사를 고수한 것이다.

갑자기 사의 표명과 반려를 놓고 문 대통령과 홍 부총리 간의 진실공방으로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사의 표명 전말을 직접 공개했다. 강민석 대변인은 “국무회의 직후 대통령이 홍 부총리를 면담했다.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으나 대통령은 격려하면서 신임을 재확인하고 반려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가 대통령과의 면담 및 반려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해서이다. 대통령의 동선이나 인사권에 관한 사안은 공직자로서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당청 “무책임한 정치적 행동” vs 野 “소신 지지”

홍 부총리의 공개 반발은 경제정책 주도권이 사실상 민주당으로 넘어간 상황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홍 부총리는 4월 총선 전후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확대를 반대하는 과정에서도 사의를 표명했지만 문 대통령이 반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부총리는 9월 여당의 전 국민 통신비 지급과 최근 재산세 완화 범위 확대에도 건건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올해만 최소한 3차례 여당과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었다.

당청은 홍 부총리에게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기재위에서 “대통령 참모가 아니라 정치인의 행동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본인의 뜻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사실상 항명을 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기재부 2차관 출신인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은 “책임지는 자세가 참 보기가 좋다고 생각한다”며 “소신 발언을 아주 높이 칭찬한다”고 말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 주무장관이 자기가 주장했던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맞지 않으면 사의를 표명하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며 “(문 대통령이) 당장 사의를 받으면 후임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반려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당정 정면충돌로 비화되자 뒤늦게 태도를 바꿨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그동안 소신을 갖고 추진해온 홍 부총리의 책임의식의 발로로 이해한다”며 “경제회복을 앞두고 총력을 기울여야 될 시기에 경제수장으로서 흔들림 없이 나가야 될 것”이라고 했다.

박효목 tree624@donga.com·황형준·최혜령 기자

#대주주 기준#갈등#홍남기#대통령#반려#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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