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종전선언’ 제안에…한미 전문가 “비현실적 제안”, 北 반응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3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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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종전선언이 비핵화를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선(先)종전선언 구상을 제시했지만 북-미 모두 호응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제안이었다는 지적과 평가가 한미 양국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핵보유국 지위를 언급하는 등 비핵화 의지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낮아진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핵 문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기류와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극명히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유엔총회 연설 때마다 북한 관련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당장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언급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세종연구소와 미국외교협회(CFR)가 주최한 ‘미국 대북정책의 미래’ 화상회의에서 “종전을 선언했는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는 게 드러날 수 있어 우려된다”며 “서울과 워싱턴이 이 문제에 대해 (공동의 이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종전이 (북한에) 얼마나 중요한지 등 북한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제재 전문가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종전선언을 한다고 치자. 그럼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모든 제재를 해제하고 비핵화를 포기할 것인가”라며 “그럴 수 없고 그렇게 하더라도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다”고 적었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애틀랜틱카운슬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도 트위터에 “(종전선언으로) 비핵화의 길을 열지 못할 것이다. 의지가 필요하지 종이 한 장이 필요한 게 아니다”고 썼다.

종전선언은 2차례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협상에서 거론됐지만 지난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모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인센티브가 되지 않는 한 미국이 종전선언을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릴 가능성이 높지 않고 그런 시기는 지나갔다고 봤다.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국민의힘 외교안보특위 주최로 열린 ‘미국 대선과 한미관계 전망 긴급간담회’에 참석해 “김 위원장과의 거래는 이제 정치적 메리트가 없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하더라도 북핵 문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의 호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은 올해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뒤 남북대화를 거부하고 미국과도 당장 협상에 나설 뜻이 없음을 내비치고 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우리 대화 제의에 북한이 한두마디라도 호응해 나오는 분위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종전선언을 제안할 타이밍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의 대화 메시지를 보내는 차원으로 보이지만 종전선언은 용도폐기된 개념”이라며 “지금 단게에서 북-미 모두 종전선언의 효용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한국만 유독 이 개념에 집착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마땅한 카드가 마땅치 않은 청와대는 종전선언 제안이 불가피했다는 기류다. 청와대 관계자는 “교착국면을 뚫기 위해, 멈춰 있는 항구적 평화 시계를 분침 초침이라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대한 호소라는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재기자 record@donga.com
최지선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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