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가겠다” 실랑이…“졸지 마시라” 면박…필리버스터 ‘웃픈’ 풍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4일 21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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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님, 지난번에는 화장실을 허락해줬다고 하는데요….”(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

“생각 못 해봤는데…3분 안에 다녀오는 것으로 (허용하겠다).”(문희상 국회의장)

24일 오전 5시 48분경. 김종민 의원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두 번째 토론을 하다가 이렇게 말하며 본회의장을 떠났다. 그는 2016년 2월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도중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화장실을 다녀온 선례를 제시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권성동 의원을 중심으로 거세게 항의했다. 미국에서는 회의장을 비우면 토론이 끝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필리버스터 첫 번째 주자였던 주호영 의원이 성인용 기저귀를 찬 채 총 3시간 59분을 쉬지 않고 발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회법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필리버스터 중간중간 고성도 오갔다. 김 의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문 의장이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자 권 의원은 “졸지 마세요. 나잇값을 하나, 자릿값을 하나”고 면박을 줬다. 이에 문 의장은 “당신이 (나를 의장으로) 뽑았다. 의장을 모독하면 스스로 국회를 모독하는 것이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문 의장의 화장실 허용을 강하게 비판했던 권 의원도 발언 2시간 30분째에 화장실로 향했다.

이날 본회의장엔 다양한 풍경이 연출됐다. 민주당 의원이 토론자로 나서면 한국당 의원들은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국당 의원이 토론자로 나서면 민주당 의원들은 책을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별의별 꼴을 다 보지만 국회의원들이 ‘정치 희화화’에 앞장서며 또 한 편의 코미디를 만들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인 필리버스터에 선거법 표결 처리를 추진 중인 ‘4+1’ 협의체가 참여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범여권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당과 정의당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선거법 찬성 토론을 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페이스북에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의사를 진행해놓고 그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토론을 한다니 이런 ‘막장 코미디’가 어디 있나”라고 꼬집었다.

박성진기자 psjin@donga.com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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