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모든 규제 조사해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혁파해야”… 경제원로, 靑 간담회서 쓴소리 쏟아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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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원로들과 청와대 경내 산책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경제계 원로들을 초청해 청와대 오찬간담회를 마친 뒤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원로들은 “소득주도성장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박승 중앙대 명예교수(전 한국은행 총재),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문 대통령, 박봉흠 SK 
사외이사(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전 국무총리),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 전윤철 가천대 석좌교수(전 감사원장), 김중수 한림대 총장(전 한은 총재).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경제 원로들과 청와대 경내 산책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경제계 원로들을 초청해 청와대 오찬간담회를 마친 뒤 경내를 산책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원로들은 “소득주도성장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박승 중앙대 명예교수(전 한국은행 총재),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문 대통령, 박봉흠 SK 사외이사(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 정운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전 국무총리),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 전윤철 가천대 석좌교수(전 감사원장), 김중수 한림대 총장(전 한은 총재).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참석자들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 원로들과의 3일 오찬 간담회에 대해 한 참석자는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원로들은 한목소리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경제에 대한 제대로 된 처방을 위해선 상황을 제대로 직시할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특히 참석자 대부분이 노무현 정부와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는데도 문 대통령의 간판 경제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전했다. 원로들의 쓴소리를 직접 접한 문 대통령은 “기회가 되면 이런 자리를 또 갖겠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 소득주도성장에 고언 쏟아낸 원로들

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가운데 제국주의 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거둔 이러한 결과는 선배 세대들이 이룬 것이다.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 원로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원로들은 시작부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2017년 대선 당시 문 대통령 대선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3축 가운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전 전 원장은 “혁신성장은 기업들이 블루오션을 찾게 도와 민간투자를 늘리는 것인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같이 하다 보면 근로자 임금을 인상해야 하고 이는 기업에 부담이 된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화시켜주고 주 52시간제나 최저임금제 시행은 탄력적으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대선캠프 싱크탱크인 ‘정책공간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을 맡았던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소득주도성장의 목표는 옳지만, (경제정책의) 수단으로서는 흠결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총재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약(藥)의 선택은 옳았지만 투약 양과 방법은 잘못됐다. 부작용이 없도록 정책을 조정해달라”며 “소득주도성장 추진 방법이 목적을 훼손하는 쪽으로 나타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경기를 살리자는 취지는 좋으나 확실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며 “소득주도성장으로 고용이 없어질 수 있고, 전체 소득이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경제 인식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경제 상황을) 국민에게 소상히 얘기해서 도움과 이해를 구해야 한다”며 “(지금 정부가) 잘하니까 이렇게 가자고 하기보다는 잘못된 것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재는 간담회 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참석자들이) 경제가 어렵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며 “지금 상황에선 정부가 잘하는 게 있더라도 ‘잘하는 게 많다’고 얘기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현 경제 여건을 감안해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면서 “중장기 재정안정성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가와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를 포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규제개혁 지금처럼 하면 안 돼”


기업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정부가 좀 더 과감한 규제 혁파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전 전 감사원장은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면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지금처럼 규제개혁 하면 안 된다”며 “먼저 기업들로부터 걸림돌이 되는 규제 리스트를 받고 정부가 필요한 규제와 그렇지 않은 규제를 분류해, 불필요한 규제는 못 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전 총재도 “수요 측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이 있다면 공급 측면에선 민간 투자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노동계에 대해 포용의 문호를 열어두되 무리한 요구에 대해선 선을 그어 원칙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성장률 하락, 양극화 심화 속에서 4차 산업혁명 등 성장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청와대는 브리핑에서 강 전 위원장이 “기득권 해소를 위한 규제 강화를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고 밝혔지만, 한 참석자는 “공정위원장 출신인 강 전 위원장이 ‘규제를 강화할 것은 강화하되 완화할 것은 완화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를 마친 뒤 “(출범한 지) 2년이 되는데 그간의 정책을 평가하고 점검하는 과정에서 오늘 주신 조언들이 도움이 된다”며 “(경제에 있어) 정부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 조언해 달라”고 말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간담회엔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김수현 정책실장, 윤종원 경제수석, 주형철 경제보좌관 등 핵심 경제참모들이 배석했다. 오찬 메뉴로 달래 해물 파전, 쑥두부 완자탕 등을 준비한 청와대는 “경제에도 봄이 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 세종=최혜령 기자
#문재인 정부#경제 원로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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