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서 ‘원자력 발전’ 언급한 속내는[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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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북한은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원자력 발전을 언급했습니다. 원전이 핵무기 개발과도 완전히 무관하지 않은 만큼 전력난 극복이 유일한 이유가 되지는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핵에 관해 매우 민감한 이 시점에 북한이 원전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북한이 실질적으로 원전을 운용할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이어질 비핵화 협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해인 연세대 철학 지구시스템공학 15학번(아산서원 14기)




A. 신년사에선 처음이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원자력 발전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미 2016년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2020년을 목표로 한 북한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핵심으로 에너지 문제를 제시하며, 에너지 중 원자력 발전비중을 증대시켜 나갈 것을 강조했습니다. 사실, 북한의 에너지 문제는 만성적인 문제로 김일성 시대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습니다. 1980년 제6차 당대회 때만 봐도 북한은 경제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분야로 전력문제를 최우선으로 꼽으며, 수력·화력 발전소 건설을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발전설비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력·화력 발전소는 설비노후화와 부품수급 문제에 따른 개보수 어려움 등으로 발전소의 이용률은 30%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 발전소들의 70~80% 이용률과 비교해 볼 때 발전용량의 비효율성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대북제재가 심화되는 가운데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차 당대회에서 밝혔듯이 “풍력과 조수력, 생물질과 태양에너지에 의한 전력 생산을 늘리며 자연 에너지의 이용범위를 계속 확대”시킬 것을 강조하는 한편 “원자력 발전 비중도 증대”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업지시에 따라 북한 주민이나 기업소들이 자연에너지 중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태양광 패널로 태양광 에너지 소비를 증대시키고 있지만, 태양광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0.1% 미만의 미미한 수준으로 만성적인 전력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안은 뭘까요? 북한에 매장된 풍부한 우라늄과 농축기술을 활용한 원자력 발전을 해법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원자력 발전 능력을 전망성 있게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DB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원자력 발전 능력을 전망성 있게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DB


그러나 돌이켜보면 북한이 정말로 원자력 발전이 절실할까에 대해서는 갸우뚱합니다. 1993년 7월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은 갑자기 흑연감속로를 경수로로 교체해 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당시에도 북한은 전력난을 언급하며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 사용권을 주장한 셈입니다. 이후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합의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흑연감속로 원자로와 관련 시설들을 경수로 발전소로 교체할 준비를 하고, 미국은 빠른 시일 내에 2000MW 규모의 경수로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와 교체기간 동안 잠정적인 에너지 제공을 위한 조치를 준비한다는 포괄적인 일괄타결을 진행시켰습니다. 그 결과 북한은 핵시설을 동결하는 대신 2003년까지 1000MW급 경수로 2기를 제공받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설립되고 북한 신포지역에 경수로 2기를 공급해준다는 협정을 북한과 체결하고 2002년 8월 3일 제1호기 최초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착수됐지만,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시인하자 11월 KEDO는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하고 경수로사업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03년 1월 10일 북한은 재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KEDO는 2차례에 걸쳐 1년씩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종료대신 중단을 결정했던 것은 만약 북한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중단상태에 있는 경수로사업을 재개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이 지연되면서 사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2006년 5월 31일 경수로 사업은 종료됐습니다. 특히, 당시 미국은 6자회담에서 북한 핵문제가 합의된다고 해도 북한은 수차례 합의를 어겨왔기 때문에 경수로 제공은 불가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경수로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 거죠.

즉,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 개발과 사용을 허용하는 NPT체제에 대해 북한은 스스로 회원국가로서의 의무를 져버리고 탈퇴선언을 재차 반복하며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핵개발을 선언하고, 마침내 2017년 11월에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기 때문에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에 대한 의구심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하에서 원자력 발전의 증대 강조를 순순히 100% 북한 전력난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확실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은 핵개발 초기인 1994년에도 200만 kW급 경수로 원자로 제공을, 2차 핵위기 이후 2010년에는 북한 스스로 영변에 3만 kW급 실험용 경수로 원자로를 2012년까지 완공하겠다고 발표했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 전년도인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는 북한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자로 발전 증대를 주장하며 NPT 의무를 준수하겠다고 했지만, 4개월 뒤 5차 핵실험을, 그리고 일 년 뒤 6차 핵실험을 통해 핵능력 고도화를 대내외에 과시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북한이 전력문제 해결을 위해 원자력 발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만약 전력문제를 원자력 발전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면, 핵무기 개발 대신 비핵화를 달성했어야 했습니다.

2003년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있는 시민들. 동아일보 DB
2003년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있는 시민들. 동아일보 DB


북한의 과거 행보와 코앞으로 다가온 2020년의 경제발전 5개년 전략과 대북제재의 현실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의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과 시급성, 그리고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에 대한 불신은 상호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기적으로 볼 때,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신년사에서 원자력 발전을 강조했다는 점은 비핵화 약속을 빌미로 평화적 핵이용권을 인정받고자 한 목적이 크다고 볼 수 있고, 김정은 시대에 와서 대내외에 천명한 2020년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한 만큼 가시적인 성과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비핵화와 더불어 얼마나 NPT 회원국가로서의 의무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가입니다. 북한이 원전을 운영하고자 한다면, 원자력 발전소를 국제기준에 맞게 건설하고 안전하게 운영하는지 등에 대해 IAEA 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점검을 거부하고 이를 협상카드로 활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국제사회는 또 다른 북한 핵문제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평화적 핵이용권 주장에 앞서 비핵화에 대한 충실한 이행과 NPT 회원국가로서의 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선행되야 할 것입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지난 30년간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불신을 신뢰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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