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위 올라온 안전법안, 첫 심사하는데 311일 걸렸다

  • 동아일보

[소방안전법 늑장 처리]재작년 발의 법안 이제야… 왜 늦었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소방안전 관련법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조종묵 소방청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소방안전 관련법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은 조종묵 소방청장.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충북 제천에 이어 경남 밀양 화재 참사를 계기로 국회의 관련 입법 직무 유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화재 안전을 관할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이른바 ‘소방안전 5개 법안’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하고도 길게는 300일 넘게 한 번도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16년 11월 21일 발의된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지난해 2월 14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돼 이달 10일 심사가 이뤄지기까지 311일이나 걸렸다. 법안들을 놓고 의원들 간 이견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었던 것. 국회의 늑장 대처가 법안 처리 지연을 가져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 행안위, 오늘 소방 법안 11건 소위 회부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지난해 9월 18일 소위에 회부된 뒤 10일이 돼서야 논의가 이뤄졌다.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도 지난해 2월 14일 소위에 회부된 뒤 아무런 추가 논의가 없다가 10일 처리됐다. 법제사법위원회를 아직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인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지난해 9월 18일 소위에 올라간 이후 논의되지 않았다. 소방산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아예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되지도 못한 채 방치되다 10일 처음 논의됐다.

행안위 관계자는 “행안위에 계류된 법안이 늘 1000건이 넘는다. 기계적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따라 심사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국회에선 소방관 처우 개선이 시급한 과제여서 관련 법안부터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행안위는 지난해 12월 제천 화재 참사가 터지고도 전체회의를 당초 이달 3일에서 10일로 일주일 미루기도 했다. 행안위는 공식적으로는 “제천 참사 현장을 조사한 소방합동조사단 일정 등을 감안해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일부 의원의 지역구 일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걸로 알려졌다. 또 다른 행안위 관계자는 “새해 들어 지역구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의원이 적지 않아 전체회의 일정을 미룬 걸로 안다”고 말했다. 행안위는 31일 전체회의를 열고 소방안전 법안 11건을 추가로 소위에 회부할 계획이다.

○ 일부 법안은 첨예하게 이익 충돌해 처리 장기화

해당 법안을 둘러싼 관련 업계 내부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것도 화재 안전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10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엔 소방안전 5개 법안이 급하게 올라왔다. 이들 법안 가운데 유독 지난해 5월 국민의당 장정숙 의원이 발의한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을 놓고 야당 의원들끼리 설전이 벌어졌다

“소방시설공사 ‘분리 발주’는 상임위에서 수차례 논의됐지만 계속 계류시킨 사안이다. 오늘 논의되기에 적절치 않다.”(A 의원)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됐다고 또 늦추는 게 적절한가. 분리 발주는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일단 논의하자.”(B 의원)

A 의원과 같은 당인 C 의원도 “일부 부처에서 반대하고 있고 오늘 논의하기에 시간상 제약이 있다”고 했다.

논란이 된 소방시설 공사 분리 발주는 건물 공사에서 방염(防炎) 내·외장재 설치 같은 소방시설 공사를 전문 업체가 따로 수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 그동안 건물과 소방시설 공사를 한꺼번에 수주한 일부 대형 건설사가 소방시설 업체에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단가를 후려쳐 부실공사가 우려된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이다. 한국소방시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소방시설 공사 시장 규모는 약 4조3000억 원으로 설계와 시공, 감리, 방염 처리에 걸쳐 총 6000여 개의 중소기업이 영업하고 있다. 물론 분리 발주에 대해선 정부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소방청은 “소방시설 공사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며 분리 발주에 찬성하지만 국토교통부는 하자 책임이 불분명해지고 시공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19대 국회 때도 업체 간의 대립 등으로 법안 처리가 되지 않았다.

장 의원은 3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분리 발주를 저지하려는 대형 건설사들의 입김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 의원 측은 “분리 발주는 건설업자와 소방공사업자들 사이에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 朴정부 시절 국민안전처 둘러싼 여야 갈등도 한몫

여야 정쟁도 입법 처리 지연의 주요 원인이다. 2014년 10월 당시 여당 소속이던 조원진 의원이 발의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가 신설한 국민안전처를 놓고 벌어진 여야 간 기 싸움이 법안 처리에 영향을 끼친 사례다. 조 의원 측은 “화재 안전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 일부 포함됐는데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문제 삼았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그해 5월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사건을 계기로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에 재실자의 나이와 피난 속도를 반영할 수 있도록 화재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화재안전영향평가 조항이 빠져 결과적으로 밀양 세종병원은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화재안전영향평가제가 박근혜 정부가 신설한 부처인 국민안전처의 권한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고 야당이 강하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장관석 jks@donga.com·박훈상·김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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