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장진호 용사 없었다면 저도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문재인 대통령 訪美 첫날]문재인 대통령, 전투碑 찾아 혈맹 강조

“제 어머니가 피란 도중 미군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 한 알씩을 나눠줬다고 합니다. 그 따뜻한 마음씨가 늘 고마웠습니다.”

28일(현지 시간) 햇살이 내리쬐는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시의 국립해병대박물관에 설치된 장진호 전투 기념비 양쪽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미 해병대 깃발이 나란히 걸렸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을 찾아 태극 모양 화환을 헌화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사탕 한 알’의 고마움을 전했다.


장진호 전투는 한미 동맹이 ‘혈맹’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된 미 해병 1사단이 2주간의 전투 끝에 극적으로 철수에 성공했다. 미국 전쟁사에는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돼 있다. 미 해병대가 희생을 감수하며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는 동안 주민 9만여 명이 피란한 ‘흥남철수’가 성공할 수 있었다. 이때 흥남에서 철수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는 문 대통령의 부모가 타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며 “저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 급박한 순간에 피란민들을 북한에서 탈출시켜 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본인의 가족사를 앞세우면서 끈끈하게 이어져 온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감성적으로 호소한 것이다. 연설 도중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미국 노병들이 눈물을 흘리자 문 대통령은 잠시 연설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사령관도 기념사에서 “한미 양국의 해병대는 형제와 같다. 부르면 우리는 언제든 달려가겠다”며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고 외쳤고 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초 40분으로 계획됐던 이날 행사는 1시간 10분간 진행됐다. 문 대통령이 장진호 전투에 이등병으로 참전했던 스티븐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 등 기념식을 찾은 장진호 전투 및 흥남철수 관계자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누면서 예정됐던 시간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옴스테드 예비역 중장에게 고개를 90도 가까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모도 탔던 흥남철수 배… 당시 항해사가 직접 찍은 사진 선물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흥남철수 당시 피란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 1등 항해사 로버트 루니 제독(가운데)이 선물한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콴티코=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문재인 대통령 부모도 탔던 흥남철수 배… 당시 항해사가 직접 찍은 사진 선물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흥남철수 당시 피란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 1등 항해사 로버트 루니 제독(가운데)이 선물한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콴티코=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어 흥남철수에서 문 대통령의 부모를 포함한 1만4000여 명의 피란민을 태우고 탈출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1등 항해사였던 로버트 루니 제독을 만나 그가 직접 찍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사진을 선물로 받았다. 문 대통령은 사진을 가리키면서 “갑판 밑 화물칸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며 “제겐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라고 고마워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 참전자가) 이제 50명도 채 안 남았다는데 오래 사셔서 통일된 한국을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옆에 산사나무를 심으며 “산사나무의 별칭이 윈터킹(Winter King·겨울 왕)이다. 이 나무처럼 한미 동맹은 더욱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흥남부두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랐던 젊은 부부가 남쪽으로 내려가 새 삶을 찾고 그(들의) 아이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돼 이곳에 왔다”며 “참으로 가슴 벅찬 감사와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방미에 동행한 국내 기업인들과 차(茶)담회를 가진 뒤 빌 워커 알래스카 주지사와 면담했다. 최근 탈핵을 선언하며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 계획을 밝힌 문 대통령은 면담에서 천연가스 등 에너지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흥남철수#문재인#대통령#방미#한미정상회담#트럼프#장진호#전투비#버지니아#한미 동맹#메러디스 빅토리호#미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