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통합, 서로 할퀴는 후보들… 정책경쟁-협치 논의 실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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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접어들자 ‘편가르기’ 몰두


5·9대선이 정확히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후보들과 각 정당 주요 인사들의 입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각 후보 진영이 상대 후보에 대한 ‘낙인찍기’와 도를 넘어선 비방으로 지지층 결집에만 몰두하면서 경제·안보 복합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건전한 정책 경쟁이 사라지고 국민통합과는 거리가 먼 편 가르기와 배제의 논리만 횡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 “보수 궤멸” vs “여의도 요물”

막말은 더 센 막말을 불러내며 점점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극우·보수세력들이 다시는 이 나라를 농단하지 못하게 철저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1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연상시킨다”며 “노무현 정부 때 이해찬 총리의 패악을 기억하느냐”고 반격했다.

홍 후보의 ‘막말’도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는 1일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를 향해 “더 이상 ‘여의도 요물’로 행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지원의 정치 인생은 이번이 끝”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홍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며 “홍준표 후보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표 받을 소리를 남발하니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부족하고 ‘똠방 각하’라고 평가한다. 모든 사람들은 홍준표를 찍으면 국민이 파면하고 감옥 보낸 박근혜가 상왕이 될 것이고 (아니면) 불안한 문재인이 대통령 되니 안철수밖에 없다 한다”고 주장했다. ‘똠방 각하’는 아무데나 아는 체하고 나대며 자기가 최고인 양 머리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의 행동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이에 앞서 홍 후보는 특정 여론조사기관을 두고 “내가 집권하면 없애버리겠다”고 했고, 좌파 단체를 공개적으로 “도둑놈의 ××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문 후보 측 박광온 공보단장은 이날 “기업을 겁박해 수백억 원씩 뜯어낸 조폭 정당의 후예다운 반민주적 폭언”이라고 맞받아쳤다.

문 후보는 이날 홍 후보를 두고 “자신들의 비리와 부패, 무능을 노동자에게 덮어씌우고 있다”고 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향해서는 “더 무서운 것은 부패 기득권 나라를 만든 세력과 손잡고 새 부패 기득권 나라를 꿈꾸는 세력이다. 절대 용서해선 안 된다”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안 후보는 문 후보를 겨냥해 “선거가 끝나면 도와준 사람들을 전부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리고 (권력을) 끼리끼리 나눠 먹는다. 그렇게 놔두겠느냐”고 공격 수위를 높였다.

○ 배제 논리 횡행

여론조사에서 앞서가고 있는 문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부터 강조했던 ‘통합 메시지’ 대신 적폐청산론을 다시 전면에 들고 나섰다.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설치를 제1공약으로 내건 데 이어 ‘보수 정권 10년’의 부정축재 재산 환수 카드도 꺼내들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안 후보와 홍 후보가 보수 표심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가운데 보수 성향 유권자를 자극해 홍 후보의 상승세를 유도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 후보의 적폐청산은 곧 인적청산으로 여겨지면서 극단 대결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후보는 “문 후보가 되면 상왕은 이해찬이다. 안 후보가 되면 상왕은 박지원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박 전 대통령 건강 이상설, 허위 여론조사 유포 등으로 ‘가짜 뉴스’ 논쟁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는 동성애 논란과 노동조합, 시민단체 문제에 대해 보수의 시각을 담은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거친 발언들이 중도층 확장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보수 지지자들을 묶어내는 데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 정책경쟁과 새 정부 구성 논의 실종

전남 신안군 섬으로 옮겨지는 투표함 대선을 8일 앞둔 1일 전남 목포시 북항에서 전남도선거관리위원회 
직원과 투표 관계자들이 투표함과 각종 선거용품들을 선박에 싣고 있다. 이 투표함 등은 1000여 개의 섬이 있는 신안군 도서 
지역의 선거에 쓰이게 된다. 목포=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남 신안군 섬으로 옮겨지는 투표함 대선을 8일 앞둔 1일 전남 목포시 북항에서 전남도선거관리위원회 직원과 투표 관계자들이 투표함과 각종 선거용품들을 선박에 싣고 있다. 이 투표함 등은 1000여 개의 섬이 있는 신안군 도서 지역의 선거에 쓰이게 된다. 목포=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대선이 막말 공방과 이전투구로 치닫는 사이 정치개혁과 민생 현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동아일보가 18, 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5%는 일자리 창출과 기업 활력 제고 등 경제 분야, 18.2%는 외교통상 분야 공약에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하지만 네거티브 공방이 반복되면서 경제 살리기, 청년 일자리 창출과 증세, 복지 등 쌓여 있는 민생 현안들에 대한 토론이 묻히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세헌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시급한 경제 외교 현안들이 쌓여 있는데도 대선 막바지가 될수록 후보들이 미래보다는 과거에 매달리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대선이 끝나더라도 극단적인 대치 국면이 이어지는 등 선거 후유증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새로운 총리 인준과 정부 조직개편 등 차기 정부 조각(組閣)부터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이 차기 정부 초기부터 흔들릴 수 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는 “대선 다음 날 바로 임기를 시작하는 새 대통령이 즉각 맞닥뜨릴 안보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당 간 협치가 필수”라며 “극단의 선거 후유증은 고스란히 다음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문병기·송찬욱 기자
#대선#통합#편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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