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적폐청산’ 빼고 ‘통합’ 내건 文, 선거용 변신은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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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어제 선거운동 개시 첫 유세지로 대구를 찾아 “영남도 호남도 박수치는 승리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통합을 시작하는 새로운 역사의 문을 대구가 열어 달라”며 ‘통합’을 강조했다. 분열과 대결을 부추긴다고 지적받아 온 ‘적폐청산’이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았다.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그동안 문 후보는 말끝마다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친일부패 기득권 세력’을 그 대상으로 지목해 아직도 친일 청산이 안 됐다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를 갖다 댔다. 권력기관과 재벌 등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첫해부터 강력하게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통합도 적폐청산의 전재 아래 가능하다고 했다.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폐단은 도려내야겠지만, 이것이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으로 돌리는 ‘편 가르기’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문 후보는 구 여권 세력과 경쟁 후보를 적폐세력으로 모는 것은 물론이고 대연정을 제안한 같은 당 안희정 충남지사에게까지 “어떻게 적폐청산 대상과 손을 잡느냐”고 몰아세웠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는 “적폐세력의 지지를 받는 것이 사실 아니냐”며 지지자들까지 적폐로 몰아세웠다. 오죽하면 안 후보가 “문 후보 캠프에도 박근혜 정부 사람이 많은데 문 후보가 손을 잡으면 전부 죄가 사해지느냐”고 반박했겠는가.

문 후보가 적폐청산 프레임을 일단 접은 것은 진보진영의 지지를 충분히 다졌다는 자신감의 반영이자 지지도가 40% 안팎에 묶여 있는 확장성의 한계를 절감한 때문일 것이다. 중도·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선거전술이란 분석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실제 문 후보 대선캠프에선 여전히 ‘적폐청산’ 구호가 넘쳐난다.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어제도 “부패기득권 세력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안 후보를 ‘적폐의 대리선수’로 몰아세웠다.

진정한 통합이란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반대자와도 소통하고 설득하며 함께 국정 운영에 동참토록 하는 것이다. 문 후보는 어제 적폐청산만 말하지 않았을 뿐 역사를 바로 세우는 ‘정의로운 대통령’, 촛불민심을 받드는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정의와 불의, 촛불과 태극기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여전하다.

문 후보가 진정 통합의 대통령이 되려면 약속으로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누가 돼도 피할 수 없는 여소야대(與小野大) 대통령으로서 반대세력을 어떻게 끌어안고 국정을 이끌어갈 것인지, 구체적인 연정 또는 협치(協治) 구상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목표로 하는 ‘사상 최초로 전국적 지지를 받은 대통령’까지는 못 돼도 ‘국민 반쪽의 대통령’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문재인#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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