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빅이벤트 있다”… 외신기자 모아놓고 ‘여명거리’ 선전 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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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의 한반도]기자들에 “새벽 6시20분전 나오라”
내용 안알려주고 휴대전화 금지… 당국 “핵실험 가능성” 한때 긴장
오후 2시 트위터로 내용 밝혀져
김정은 직접 나와 테이프커팅… 대북제재 무용론 대내외 과시

안으론 전쟁 훈련… 밖으론 신시가지 홍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특수작전부대 강하 및 
대상물 타격 경기대회’에 참석했다고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행사에서 북한군의 환호를 받고 있다(위쪽 사진). 
북한의 최신식 거주지역인 평양 여명거리의 준공식이 13일 열린 가운데 행사에 참석한 북한군이 인공기를 들고 여명거리를 걷고 
있다(아래쪽 사진). 노동신문·평양=AP 뉴시스
안으론 전쟁 훈련… 밖으론 신시가지 홍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특수작전부대 강하 및 대상물 타격 경기대회’에 참석했다고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행사에서 북한군의 환호를 받고 있다(위쪽 사진). 북한의 최신식 거주지역인 평양 여명거리의 준공식이 13일 열린 가운데 행사에 참석한 북한군이 인공기를 들고 여명거리를 걷고 있다(아래쪽 사진). 노동신문·평양=AP 뉴시스
북한이 13일 ‘빅 이벤트(Big event)’라는 이름으로 외신 기자 200여 명을 초청해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을 공개했다. 초청 이유조차 모른 채 평양에 들어갔던 외신 기자들은 김정은이 대북제재 ‘무용론’을 선전하기 위해 건설한 신시가지 홍보에 들러리가 됐다.

북한 당국은 이날 새벽 평양에 온 외신 기자들을 급히 깨운 뒤 “빅 이벤트를 볼 준비를 하라”고 통보했다. 로이터통신은 평양 현지에 있는 취재진이 당국으로부터 예정됐던 일정이 취소된 대신 ‘크고 중요한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 아침 일찍 만나자는 통보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벤트’의 성격이나 장소 등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평양에는 김일성의 생일인 태양절(15일)을 앞두고 북한 당국의 초대를 받은 미국과 일본 등 외신 기자 200여 명이 입국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2일까지 체류할 수 있는 초청장을 받고 11일 평양에 도착했다.

통보를 받은 기자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미국 CNN의 윌 리플리 기자는 오전에 올린 트위터에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빅 이벤트를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북한 측 수행요원들조차 우리가 어디로 갈지, 무엇을 볼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의 베이징 특파원인 제러미 고 기자도 트위터에 “오전 6시 20분 이전에 (숙소에서)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휴대전화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취재진이 휴대전화를 모두 북한 당국에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에 이날 오전 추가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남한에서는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대형 도발을 감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고, 외교안보 당국도 긴장 상태로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그러나 북한이 말한 빅 이벤트는 김정은이 참관한 여명거리 준공식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오후 2시경 제러미 고 기자가 트위터에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오늘 아침 평양 여명거리의 준공식(opening)을 주재했다”고 밝히면서였다.

일본 NHK방송도 이날 오후 “오전 10시 30분(평양 시간 오전 10시)부터 여명거리 준공식이 열려 그 모습이 외국 언론에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NHK는 김정은이 준공식에서 직접 테이프를 자르고 박수를 치는 장면,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단상 뒤에서 경호요원 등과 대화하는 모습 등을 영상으로 내보냈다.

여명거리는 김정은 정권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반발하면서 평양에 조성한 신시가지로, 70층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빌딩이 대거 들어섰다. 북한은 태양절까지 ‘무조건’ 완공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최근 막바지 공사에 박차를 가해 왔다. 이 거리 건설을 위해 북한의 모든 자원이 투입됐다. 김정은은 정권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을 앞두고 외신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준공식을 열어 여명거리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모습을 연출한 셈이다.

세계 언론을 우롱하는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2012년 4월에도 ‘광명성 3호 위성’으로 포장한 장거리 로켓 발사를 홍보하기 위해 외신 기자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정작 로켓 발사 당일에는 외신 기자들에게 발사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 평양을 방문 중인 로이터통신 제임스 피어슨 한국특파원은 트위터에 “예전에도 (북한은) 복잡한 보안 절차를 거치게 하더니 결국 음악 공연을 관람하게 한 적이 있다”고 다소 김이 빠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평양에 입국한 외신 기자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더 보여 줄지는 미지수다. 태양절 열병식에서 최근 개발한 미사일을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

주성하 zsh75@donga.com·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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