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네거티브의 수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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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는 게 네거티브 선거운동이다. 그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64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린든 존슨 측은 들판에서 데이지 꽃잎을 하나 둘 세던 여자아이의 모습을 핵무기 발사 카운트다운과 교차 편집하면서 핵폭발과 함께 여자아이가 화면에서 사라지는 선거광고를 만들었다. 공화당 대선 후보 배리 골드워터가 집권하면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과장된 공세였지만 존슨의 압도적 승리에 큰 보탬이 됐다.

▷‘안철수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上王) 된다’나 ‘문재인 찍으면 도로 노무현 정권 된다’는 언급은 관점에 관한 것이므로 할 수도 있는 네거티브다. ‘안철수 딸의 재산을 밝히라’든지 ‘문재인 아들의 원서를 내놓으라’는 주장은 검증이므로 의혹이 남지 않을 때까지 해야 한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가짜 뉴스에 기초한 네거티브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것이 걱정이다. 그렇게 되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무너뜨린 병풍(兵風) 공작 같은 흑색선전이 될 수 있다.

▷나쁜 효과라도 거두기는커녕 안 한 것만 못한 ‘찌질한’ 네거티브도 있다. 후보가 조직폭력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공세가 그렇다. 정말 조폭인지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정치인은 잘 모르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도 한다. 한쪽이 세월호 앞에서 인증샷을 찍었다고 공격하고, 다른 한쪽이 너희도 같은 사진을 찍지 않았느냐고 역공세를 펼치는 것도 와 닿지 않는다. 이런 네거티브로 매일 아침을 여니 굿모닝 대신 ‘문모닝’이니 ‘안모닝’이니 조롱하는 말까지 들린다.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맞붙은 윤보선은 간첩 황태성이 박정희를 만나러 내려왔다가 잡혔다는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이 네거티브는 박정희가 일찍 좌익 의혹을 불식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에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실을 알려줬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었다.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는 네거티브가 없으면 유권자는 후보가 전하고 싶은 정보만 얻게 될 것이다. 네거티브를 굳이 한다면 조금은 가치 있는 정보나 관점이 담긴 네거티브였으면 좋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선거#선거운동#네거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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