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현직 자치단체장이 대거 출마 준비를 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빅2’에 밀려 아직은 유력 주자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을 놓고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고 행정 경험으로 무장한 자치단체장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 ‘변방’까지 대선 출마 러시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의 1997년 대선 출마 이후 대권을 향한 지방자치단체장의 ‘벽’은 허물어졌다. 특히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통령 당선으로 수도권 광역단체장은 대권으로 가는 디딤돌처럼 여겨졌다. 이번 대선에선 지자체장의 출마가 봇물 터지듯 할 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과 비수도권 단체장인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변방’의 도전이 두드러진다. 안 지사는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5%를 기록하는 등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이번 대선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지자체장들은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의 선두 경쟁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고 애쓰는 형국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가장 먼저 주장하며 촛불 민심의 지지를 받았던 이 시장은 최근 지지율 하락을 겪으며 고심하고 있다. 이 시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팬덤을 한껏 활용하기 위해 15일 지지자 그룹인 ‘손가락혁명군’ 출정식을 가졌다. 민주당 내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3위 자리를 굳혀 가는 안 지사는 같은 친노(친노무현) 그룹으로 정치적 뿌리가 같은 문 전 대표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하고 있다. 지지율 부진에 빠진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 전 대표는 청산 대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며 반등을 꾀했다가 문 전 대표 적극 지지층의 호된 공격을 받았다.
바른정당에서는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사교육 전면 폐지, 모병제 도입 등 연일 파격적인 공약을 내놓으며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지지율 부진으로 고민이 깊다. 남 지사는 16일 △2023년 모병제 전환 △전시작전권 환수 △핵무장 준비 단계 마련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국형 자주국방’ 공약을 내놓았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역에서는 아직 젊은데 임기를 마치고 성과를 보여준 뒤 나서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며 불출마에 무게를 싣고 고심하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에서는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기현 울산시장 등이 대선 출마 공식 선언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대선 출마를 보는 엇갈린 시선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행정 경험이 있는 지자체장 출신이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생활 밀착형 정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한국에서도 지자체장에 대한 선호는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자체장들이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이란 식으로 대권 도전을 ‘꽃놀이패’ 디딤돌로 삼는 데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현재 대선 주자로 꼽히는 지자체장은 대부분 직을 유지한 채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11일 “경선에 참여해도 현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고, 안 지사도 당내 경선까지는 직을 유지할 계획이다. 박 시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시민과의 약속이 있고, 공식적인 대선 후보가 된다면 모를까 경선 단계에서는 직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초선인 남 지사도 앞서 “도지사 임기는 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자체장들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시선은 따갑다. 당장 지지세 확산을 위한 지자체장들의 ‘전국 투어’가 급증하면서 지방행정의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충남도의회에서는 “안 지사가 충남도의 행정조직과 도지사 직을 대권 행보의 지렛대로 삼고, 도정을 이미지 메이킹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시장의 경우 지난해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전국을 돌며 유권자들을 만난 것을 놓고 ‘시 예산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 16일 성남시의회에선 새누리당 이재호 의원이 “역대 시장 중 가장 많은 비서실 직원(14명)을 운영하는 등 대권 놀음을 시민의 혈세로 메워가고 있다”고 이 시장을 공격하기도 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자체장들이 행정 경험을 탄탄히 쌓아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현직을 유지한 채 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공무원들이 음양으로 동원될 수밖에 없고, 지자체 경영이 소홀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