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박정희기념관 사업에 미르재단 참여 지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최순실 게이트]최순실-안종범-차은택-송성각 공판

 최순실 씨(61·구속 기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과 영향력을 배경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사익을 챙긴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최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직원에게 박 대통령 침실의 인테리어를 손보도록 하는가 하면 고위 공무원 인사 관련 보고서도 작성하게 하는 등 청와대의 모든 일을 직접 챙겼다.

 또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의 자금을 그의 아버지를 기리는 ‘박정희기념관’ 사업에 쓰려 했다는 사실도 재판을 통해 드러났다. 
○ 최순실 “어디라도 납품 도와주겠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최 씨가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이 현대자동차에 납품을 하는 데 도움을 준 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 KD코퍼레이션은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1)의 초등학교 친구 아버지 이종욱 씨가 운영하는 회사다. 최 씨는 이 씨의 부인 문모 씨와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 오랜 친분을 맺어 왔다.

 검찰 조서에 따르면 문 씨는 “최 씨가 2012년 대선 직후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여 주변에서 ‘로또 당첨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고 진술했다. 문 씨는 “그 무렵 모임에서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은 얘기를 하며 짜증을 냈더니 최 씨가 ‘(남편) 회사 어디에 납품하고 싶으냐.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다”며 “그 이야기를 듣고 최 씨가 대통령과 친하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 씨는 또 “최 씨가 ‘시댁에 기 한번 살려 준다’며 청와대 로고가 찍힌 선물과 청와대 시계를 갖다 준 적도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최 씨의 청탁을 현대차 측에 전달했고, 그 결과 KD코퍼레이션은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현대차에 10억5000만 원 상당을 납품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 주변의 작은 일들을 최 씨가 챙기며 사실상 청와대의 ‘안주인’ 역할을 한 사실도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조서를 통해 확인됐다. 최 씨가 소유한 건물을 관리하는 회사 직원 문모 씨는 검찰에서 “최 씨의 지시로 두 차례 청와대에 들어가 박 대통령의 침실을 수리했다”고 진술했다. 문 씨는 “처음에는 대통령 침실의 선반 위치를 조정하고 커튼을 달고, 샤워꼭지를 교체했다”며 “두 번째 방문 때는 전등을 갈고 서랍 고치는 일을 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가장 사적인 장소인 침실조차 청와대 직원 대신 최 씨 손에 맡긴 셈이다.
○ “최순실 차명 회사에서 고위 공무원 인사안 작성”

 최 씨의 측근이 관세청 고위 공무원 인사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보관한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이날 최 씨의 차명 회사 ‘더운트’ 직원 류모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국가비상사태(북핵 실험) 중 고위 공무원 기강문제 건’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류 씨가 2016년 초 작성해 최 씨에게 보고한 이 문건에는 “관세청 차장은 외부에서 인선하는 게 타당하다”며 “기획재정부도 (외부 인선을) 좋아할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적혀 있다. 또 “○○국장 자리에는 관세청 내부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성실하며 우호적인 L 국장이 적임자”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인사에서 L 국장의 인사는 문건 내용대로 이뤄졌다.

 최 씨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자신이 설립한 회사 더블루케이를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만들려 한 정황도 공개됐다. 이날 검찰이 공개한 ‘신규 법인 인투리스 조직 구조안’에 따르면 인투리스라는 지주회사 밑에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더블루케이가 계열사로 돼 있다. 이 문건 역시 관세청 인사 문건을 작성한 ‘더운트’ 직원 류 씨가 만들었다.
○ 박 대통령 “미르재단, ‘박정희기념관’ 사업 참여”

 박 대통령이 ‘박정희기념관’ 사업에 미르재단을 참여시키라고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보좌관 김모 씨가 작성한 ‘대통령 지시사항 이행 상황’ 문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14일 안 전 수석에게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 미르재단 등과 논의해 (박정희기념관) 홀로그램 미디어 등의 재정비 방안을 강구하라”는 등 미르재단의 사업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이 문서에는 “기념관 리모델링 계획 수립 완료 후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대통령민정수석실이 주관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최 씨 측 이경재 변호사는 “미르와 K스포츠재단은 대통령의 공익적 정책에 따라 전경련과 협의해 설립됐다”며 “검찰이 같은 증거에,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은 우리 정부 권력을 권위주의 정권으로 보는 ‘인식의 동굴’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또 “차은택 씨나 고영태 씨가 두 재단에 직책은 없었지만, 측근들을 자리에 앉혀 일을 도모하려 했다”며 둘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최 씨는 공판 마지막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오혁 hyuk@donga.com·김민 기자
#박근혜#박정희기념관#미르재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